목화 소개

목화 소개   - Cotton   綿花  초면(草綿)

목화하면 문익점 선생을 생각하게 되고 남평문씨하면 목화를 생각하게 됩니다.
목화는 우리 국민들께 많은 유익함을 주었으며 입고 계신 내의는 거의가 면(cotton)입니다
세계화로 우리보다 자연조건이 좋은 곳들과 경쟁이 되지 않아 작물로는 재배를 하지 않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도 목화의 재배가 늘고 있습니다. 원예작물로 재배되기 때문입니다.

* 수록 내역 및 순서는 아래와 같으며 제목을 클릭하면 바로 연결됩니다
          - 목화씨앗 분양
          - 목화 품종과 분류
          - 목화 형태와 용도
          - 각국의 목화재배 역사
          - 목화 화분 재배
          - 문씨와 목화
                     1) 충선공과 산청시배지
                     2) 동정의 역사
                     3) 승로(承魯)公(익점公 장손)
                     4) 래(萊)公(익점공 손자, 이곡파 파조)
                     5) 영(英)公(익점공 손자)

 

목화씨앗 분양

추위에 떨던 백성들을 따뜻하게 하였던 목화는 현재는 거의 수입하고 있어 구경조차 어려운 식물입니다. 꽃이 좋고 다래가 맺히며 목화는 겨울을 견디니 관상용으로 좋으며 토질을 가리지 않고 잘 자라기에  화분에서 기르면서 자연을 사랑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도록 합시다.
* 아래의 업체로 연락하시면 목화씨앗을 유료로 구입할 수 있습니다.

구분

             설                 명

산청목화시배지

경남 산청군 단성면 배양리 106번지

목화마을

원주시 문막읍 건등3리 목화체험장, 목화제품 판매등

e방앗간

경북 의성군 의성읍 도동리 967-2 목화씨앗 가공판매 ☎054-843-3917

권외진 여사

경남 산청군 단성면 성내리 187-5 목화연구원장
산청의 목화재배 및 실뽑기 베짜기 기능인을 역임함

칠성면업사

경남 함양군 함양읍 용평리 607-23 임채장 ☎055-963-2328
목화타면 및 솜판매 이불제작,

 

목화의 품종과 분류

학  명

 Gossypium herbaceum Linn

원산지

 동아시아

꽃  말

 어머니의 사랑

염색체수

  2n=26

개화기

 8-9월

    분 류

 아욱과 목화속 1년초

품 종

① 해도면(G. barbadense):열대 남아메리카 원산
    가. 서인도제도에서 도입하여 미국에서 재배된 것
    나. 중앙아메리카에서 나일강 유역으로 도입된 잡종으로 섬유길이가 짧고 갈색이다
    높이 약 2 m. 꽃은 밝은 황색 바탕에 자주색 반점이 있다. 열매는 3조각으로 갈라지고
    솜털은 종자 끝에 달 리며 백색으로 명주실 같은 광택이 난다. .  
② 육지면(G. hirsutum):과테말라·페루·멕시코원산 만생종  북위 37°까지 경제적인 재배됨
    미국 목화지대에서는 대량제배하면서, 1,200종류 이상의 품종으로 발전시켰다.
   솜털은 종자에서 잘 떨어지며 백색으로 길고 꼬임성이 좋아 방적원료로 최고품이다.
   꽃은 백색 또는 담황색이고 반점이 없다.  
③ 인도면(G. arboreum):인도·아라비아·아프리카에서 재배된 다년생 목본으로
     재배의 역사는 기원전이나 현재는 인도 이외 지역에서는 재배하지 않으며,
     섬유가 거칠고 짧지만 매우 질긴 것이 특징이다.
④ 아시아면(G. herbaceum):아시아 지역의 재래종. 조숙성으로 고위도 지방에서도 재배됨
     인도에서는 오래 재배되고, 이란·중국·한국·일본에서 집약 재배함 미국에서는 재배않음
     꽃색에 백색과 홍색이 있고 솜털은 종자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섬유가 짧고 꼬임성이 적어 방적에는 부적하여 카펫·담요 등과 양털과 섞어서 사용한다. 

한국의
목화

충선공(忠宣公) 문익점공이 아시아면의 목화씨를 들여오시고  
손자인 문승로는 의성에 목화를 보급했고,
손자인 문래는 실뽑는 기구인 물레를 만들었으며 ,
손자인 문영은 베짜는 기구를 만들어 보급하였습니다

시배지 명예관리인 정정대씨(58)는 "목화는 꽃과 목화송이가 함께 아름다워 꽃이 두번 핀다고 말하고 목화 송이는 3~5개의 뭉치가 한 올로 이어져 있는데 길이는 1KM를 넘으며 옛날에 삼베, 갈포등 갈색이나 황색 옷을 입던 우리민족이 흰 목화로 만든 옷을 입으면서 백의민족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일보 1997/12/12 19면  최학림기자)

 

목화의 형태와 용도

기후

목화의 자람에 고온이 필요해 연평균 15℃ 이상인 열대에서 온대의 남부에 걸쳐 재배된다. 재배의 북방한계(限界)는 북위 37°였으나 품종이 개량되어 현재는 몽골에서도 재배된다.햇볕을(日照) 좋아하여 자라는 동안 날씨가 40%이상이 맑아야 하고, 특히 결실기에는 맑은 날이 계속되어야 열매 맺음이 좋아 미국 남부의 목화지대가 적지로 목화의 대부분을 생산하고 있다.

토양

이어짓기(연작)로 인하여 생기는 장애가 적으며 토양에 대한 적응성이 크다. 산성에는 약하나 염분에는 강하므로 염분이 많은 알칼리성 토양에서 재배되는 것이 보통이다

형태

꽃모양은 무궁화나 접시꽃과 비슷하다.꽃 밑에 모서리가 둥근 삼각형 모양의 3개의 포엽(包葉)이 꽃잎을 갈고리처럼 움켜쥐고 있는데 안쪽에 꽃받침이 있고 꽃받침 속에서 꽃봉오리가 생겨나 길게 자라나는 모습도 아름답다.
목화는 열대 지역에서는 다년생이지만 온대에서는 겨울을 나지 못해 매년 씨앗을 뿌린다. 가지가 많이 갈라지며 키가 0.6∼1.8m이다. 잎은 2∼4개가 손바닥 모양으로 갈라지며 길이는 5∼10㎝정도로 영양에 따라 다르다. 여름에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 결과지(結果枝)가 나와 각 마디에 꽃이 핀다. 꽂잎은 5개로 줄기는 약 6㎝정도이며 꽃이 필 때는 크림색이나 점차  붉게 변하여 꽃이진다.
자화수정(自花受精) 후에 생기는 삭과는 길이 3∼4㎝로 복숭아 열매 모양이고 녹색이며, 성숙하면 삭과는 갈색으로 되고 갈라져 열리면 목화가 나타나게 된다(개서)
목화 안에는 3∼5칸이 있고 1칸에 7∼8개 정도의 씨앗이 생긴다.

실뽑기

섬유는 긴 것이 해도면이 5㎝, 육지면은 3㎝, 아시아면은 2㎝ 정도이다.
섬유는 전체가 꼬이는데 꼬임은 실을 만드는데 중요한 성질로 해도면이 많고, 아시아면이 적다. 실면(實綿:씨앗과 솜이 함께 있는것)을 따서 공장에서 조면기로 씨를 뺀 것을  조면(繰綿) 또는 목화(木花)라 하고 조면율은 육지면이 30∼35%, 아시아면이 25∼30%이다.씨앗(綿實)은 16∼20%의 단백질과 12∼20%의 기름을 함유한다.

용도

○솜  : 고급품은 면사·면직물 등을 만들고, 품질이 나쁜것은 이불솜, 탈지면 등에 이용된다. 솜화약(火藥)이나 각종 충전재(充塡材)로 사용된다.

○목화씨 : 기관지의 천식과 디스토마의 구충제로 사용되었고

○면실유 : 압착 또는 용매추출(溶媒抽出)로 짠 기름으로 품질이 좋고 값이 싸 튀김기름 등에 사용.  냉각법으로 고형분을 제거한 것은 샐러드유·마요네즈유에 적합하고 마가린 원료가 되며 동물성지방과 섞어 라드(lard)를 만들며 비누 원료에도 쓰인다
목화다래 : 목화의 어린 열매는 단맛이 있어 날 것으로도 먹으며 기침에 효가가 좋다
○씨껍질   : 사료나 비료로 이용되고 약재로 사용된고 삶은 물을 바르면 아토피에 효과가 있다
○뿌리,줄기 : 8시간 정도 고은 물로 단술(감주)를 만들면 약효가 있고 맛도 좋다 

 

각국의 목화재배 역사

인도

아세아 목화로 기원전 수세기부터 목화공업으로 유럽에 알려졌으며 모헨조다로유적(현재 파키스탄領)에서 기원전 2000년 경의 지층에서 면사가 발굴되었다

페루

아세아면이 BC1500년경부터 이용되었고 인도와 별도로 직물을 만들었음이 밝혀졌으며 그 후 동남아시아·아라비아·아프리카 및 남부유럽으로 목화재배가 퍼졌다

중국

아시아면이 11세기경부터 화중(華中)·화남(華南)에서 중요한 작물로 재배되었다

이집트

서양인들이 해도면이 서아프리카나 수단에 전해져 카리브제도 면이 탄생되었다.

이집트

고대부터 섬유작물로 아마(亞麻)가 생산되었지만 기원전부터 목화가 이용되었다.

중남미

콜럼버스가 오기 이전부터 중남미·서인도제도 일대에서 목화가 재배되고 있었다

영국

인도의 목화를 파나마에서 재배를 하고 미국에 전함

미국

1740년경 버지니아에서 재배되고 영국의 랭거셔에 대방적업이 일어나자  미국은 대규모 기업재배화 됨과 방적에 유리한 육지면은 세계 여러나라로 퍼져 생산되었다

한국

1363(공민왕 12)년 원(元)나라에 서장관으로 갔던 문익점(文益漸)이 목화씨를 숨겨와  경남 산청에서 장인 정천익(鄭天益)과 함께 재배하여 전국 각지에 보급되었다

1904년부터 목포(木浦) 면작 시험장(현 농촌진흥청 작물시험장 목포지장)에서 육지면 품종 육종시험을 실시하고 있는데 목화 품종으로는 목포 6호·목포 7호·수원 1호 등이 있다

문익점선생이 가져오신 목화는 일제때 육지면의 재배 권장에 밀려 자취를 감추었다
해방후 목화임업시험장에서는 일본 작물시험장에 보관한 씨앗을 구하여 왔으며  산청목화시배지에서 실을뽑고 베를 짜는 시연을 하던 외손인 권외진여사(016-549-1722)께서 산청의 도천서원앞과 강누리에서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다.

 

목화 화분 재배

길게 자라는 꽃봉우리와 희게 피었다가 붉게 지는 꽃은 물론이요 목화가 피기전의 열매인 다래도 구경거리이며 하얀 목화솜은 더욱 좋습니다. 옛부터 목화는 꽃과 솜꽃으로 두번 꽃이 핀다고 하여 화도화라고 했습니다. 화분에서 길러도 햇볕과 양분만 좋으면 생명력이 강해 잘 자랍니다.
목화를 키우면서 자연을 배우고  헐벗은 백성을 사랑하신 익점 선조님의 백성을 사랑하신 솜처럼 따뜻하고 포근한 정을 느끼도록하고 관찰일지도 적어서 관찰력과 기록하는 습성을 갖게하고 정서순화에도 도움이 되게 합시다.목화솜은 쿠션이나 방석을 만들거나 크리스마스 트리의 장식으로 사용해도 좋습니다. 화분에서 목화를 길러 자녀의 관찰력과 정서순화에 도움을 줍시다.

과정

작업 설명

씨앗준비

전년도에 수확한 솜에서 목화씨앗을 가려냅니다.
파종전에 씨앗을 세수비누를 이용하여 씻습니다(솜털의 지방분과 밀납을 제거함)
맑은 물로 비눗물을 씻어낸 후에 물에 담그고 위에 떠오르는 쭉정이 씨앗은 버립니다.
부산시 금정구 부곡3동 23-2번지 부산 종친회에 우표를 동봉한 반송용 봉투(주소적고 우표붙인것)를 보내면 선별된 목화씨앗 20여개를 보내드립니다.

씨뿌림

아파트인 경우 남부지방에서는 4월 하순 중부지방은 5월 상순이 좋습니다
대량으로 밭에서 재배할 경우는 1개월 정도 늦게 뿌리는데 씨앗을 나뭇재와 오줌을 넣어 반죽하여 버무려서 뿌렸으나 황산으로 훈증 소독하여 씨앗을 뿌립니다.

씨앗뿌림

많은 씨앗은 포토를 이용하여 씨앗을 뿌리고 소형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보온합니다
소량이면 몇개의 종이컵을 준비하고 물 빠짐 구멍을 뚫고 흙을 담습니다
씨앗의 뾰족한 부분이 아래로 가도록 3개씩 심고 씨앗 높이의 2~3배의 흙을 덮습니다

관리

2~3일에 1회 정도 물을 주어 흙이 마르지 않게 합니다. 물기가 많으면 좋지 않습니다.
높은 온도에서 싹이 잘 나오니 햇볕 좋은 곳에 두고 투명 비닐로 덮어주면 좋습니다
10여일 후 새싹이 올라오면 비닐을 벗겨내고 떡잎이 나오고 자라면서 본잎이 나오게 됩니다

쏙아내기

파종 20여일 후(키 10cm정도) 약한 싹들은 뽑아내고 종이컵에 한 개의 싹만 남깁니다

옮겨심기

쏙아낸 10여일쯤 후 목화의 키가 15cm 정도 자라면 밭에 옮겨 심거나
지름 30cm 정도의 화분에 옮겨 심어 햇볕이 잘드는 곳에 두고 첫날은 햇빛을 가려줍니다
배양토는 퇴비5, 흙3, 모래2,  정도이며 영양분이 많은 편이 잘 자랍니다

자람관찰

7월 초순경 꽃 봉오리가 맺기 시작하고 각 마디에 잎이 달리고 가지가 무성해 집니다.
키가 작고 가지가 많은 목화가 튼튼한 목화로 열매가 많이 맺습니다.

순자르기

꽃 봉우리의 자람을 돕기 위해 봉우리 없는 줄기의 끝을 때때로 잘라 줍니다
화분에서 키울 경우는 겹쳐서 햇볕을 못받는 잎이나 가지를 자르고 모양을 만듭니다

꽃 봉오리가 맺히고 흰꽃봉우리가 보이면 다음날 오전 7시~10시 사이에 꽃이 핍니다
꽃 잎은 5장으로 흰색, 백황색, 홍색으로 첫날은 엷은 크림색이지만 다음날은 붉게 변하여  떨어지고 다른 봉오리가 계속 피며 벌이나 나비가 없어도 열매를 맺습니다. 

다래

꽃이 지고나면 3~4㎝ 정도의 원형의 봉우리가 생기고 20일 가량 계속해 자랍니다(다래)
다래는 단맛이 있어 어린이들이 간식으로 따먹다가 들키면 혼이 나기도 했습니다.

북돋우기

왕성하게 자라면 퇴비를 추가로 넣어주고 주변이 흙을 모아 줄기쪽에 쌓아 높여줍니다

솜꽃

다래가 익어서(재래종 30일 육지면 43일) 갈색으로 변하고 서서히 벌어지면서 목화 솜이 보입니다. 관상용으로 두면 겨울에도 솜을 볼수 있습니다

거두기

먼저 익은 것 부터 순차적으로 따서 햇볕에 3일 정도 말려서 실을 뽑거나 솜으로 사용함.
솜은 지방분이 많아 물의 흡수가 잘 되지 않아 약솜은 지방분을 빼어 탈지면으로 사용함

병충해 방제

진딧물 : 울숙주에서 알로 월동한 것이 4월 중~하순에 부화하여  5월하순~6월상순에 유시충이 나타나 점차 여름숙주로  옮겨진다
목화의 즙액을 빨아먹으며 각종 바이러스를 매개하고 그을음병을 일으켜 자람을 방해함
진딧물약을 많이 뿌리면 목화가 죽으니 잎에 소주를 뿌려도 효과가 있다.

잎말이벌레 : 애벌레는 목화잎을 먹고자라서 생장을 방해하고  자라서는 목화 잎을 말아 집을 짓고 알을 낳으니 말린잎은 따서 버린다.씨앗을 황산으로 훈증한 경우 발생이 줄어든다

 

문씨와 목화

충선공과 산청시배지

 

문익점선조님은 고려때 원나라 사신의 서장관으로 가시니  고려왕을 폐하고 덕흥군을 왕으로 옹립하라는 원나라 황제의 명을 거역하여 월남으로 귀양가고, 3년뒤 북경으로 오면서 목화를 보고는 국민에게 이롭다는 판단을 하시고는 국외에 반출을 금하는 품목이라 신변의 위험을 각오하고 숨겨오셔서 고향인 산청에서 기적적으로 재배에 성공하셨다.
이후 목화는 베짜는 기술과 함께 온나라에 빠르게 전파되어 삼베나 모시로 떨었던 서민들도 솜옷과 솜이불로 따뜻한 겨울을 보내게 되고 의생활을 비롯해서 생활 문화의 혁명과 경제적으로는 목화재배와 농한기의 김쌈으로 농가 경제의 혁명과 대일 수출로 외화획득에도 큰 몫을 했습니다.  가벼운 무명베는 화폐대신 통용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조에 협조하지 않고 벼슬도 사양했지만 역대 왕들은 문익점의 공로를 치하했는데 왕들은 예장을 하고 벼슬을 추증하며 부조묘와 강성군 부민후에 봉하고 후손들의 등용과 면천 등을 누누이 명하였으나 이는 실천되지는 못했습니다.


익점공은 목은(이색), 포은(정몽주)과 함께 고려를 지키려고 이성계 일파의 전제개혁에 반대하니 고려사 열전 문익점 편의 기록에는  조준의 말도 되지 않는 탄핵이 수용되어 파직되었으며, 문익점의 열전임에도 그 씨를 빼는 기구와 실을 켜는 수레는 다 정천익이 만들었다고 적었는데 고려의 역신들이 고려사를 적었으니 문익점에 대한 폄하는 인정하지만 모두를 다 했다는 정천익公은 열전조차 없으며 시호나 왕들의 교지 한장 받은 기록이 없으니 역신들의 실수입니다.


정천익공의 후손들은 목화시배지 옆에 세운 비석에 원에 가서 목화를 가져왔다고 적어 자신의 선조를 욕되게 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를 살린 문익점공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하여  산청에 건립한 사적 108호 문익점 목화시배지에 대한 명칭변경 소를 제기하여  목면시배유지로 명칭이 변경되었는데 사위와 장인이었던 문익점공과 정천익공의 입장을 보아 두 문중이 화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입니다.

 

우리의 세거지인 산청을 지키지 못한 사유는 왕권을 강화하던 태종때에 문익점공의 조카인 가학선조의 난으로 후손들은 뿔뿔이 숨어야 했기에 선영조차 돌보지 못하였고  누대의 세거지였던 산청(구지명 강성)세거지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목면의 보급에 따른 공적에 대해서 일찍이 秋江 南孝溫은, "한 집안으로 말미암아 고을이 혜택을 입게되고, 한 고을로 말미암아 온 나라가 혜택을 입게 되었으며, 만세토록 천지와 더불어 무궁히 그 혜택이 끼칠 것이다. 그 깊고도 높은 공적을 무어라 이름할 수 없다"라 하시고 후세에 '木綿公'이라는 별칭을 얻었을 만큼 목면의 전래가 그의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공적임은 말할 나위 없다고 하셨습니다

한편 익점공에 대한 후대의 평가를 살펴보면, 그는 道學의 창명과 덕행 및 충절 때문으로도 당대 및 후세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인물로 평가되었다. 金宗直을 비롯해서 鄭汝昌, 金宏弼, 曺植, 李滉, 宋時烈 등한 시대를 대표하는 유학자들이 한결같이 그가 끼친 '衣被生民之功'을 찬양하는 한편, 그의 道學과 德行 忠節을 더불어 칭송하는 시문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문익점의 공적은 후대에 이를수록 더욱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영조는 그의 후손에 대해서 거듭되는 특전을 내리면서 "우리 나라가 3백년 전 이래 衣冠 文物이 및나게 일신된 것은 실로 江城君이 목면씨를 가져옴에서 비롯된 것이니 공이 강성군 보다 클 수 없고 덕이 강성군 보다 훌륭할 수는 없다"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라고 적었다.


동정의 역사
동정은 한복의 목이 닿는 부분에 덧 붙이는 좁은 백색천의 테두리를 말합니다.
동정을 달 게 된 유래는 .세종원년 기해년 강성군 문익점 할아버지의 목면으로 인하여 이룩된 산업의 혁명과, 외화획득의 공로, 의류혁명의 위대한 공덕을 이 세상에 영원히 기념하는 뜻으로 세종임금이 특별히 만조백관을 모아 조야에서 명하기를 "이나라 백성이면 남자든 여자든 옷을 입는 것은 문익점 선생의 공덕인고로 동정을 달아 기리도록 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색깔있는 동정을 달지 못하게 하고 흰 동정만 달 게 한 것은  문익점 선생의 사후였기 때문에 영원히 상복을 입는다는 뜻입니다.

 

승로(承魯)公  (익점公 장손)

의성현감으로 계시면서 목화 재배의 적합여부를 시험하신후에 적합함을 아시고는  의성이 목화의 주산지가 되게 하셨는데 현재의 경북 의성군의 공룡발자국이 있는 곳으로 가는  고갯길옆에 위치한 목화 시배지는 승로 선조님이 목화의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하여 시험재배 하던 곳이며 목화 시배지가 있어 목화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목화재배로 고을을 부강하게 하신 공을 공적을 기리는 비석이 있지만 지금은 목화를 전량을 수입하고 있지만 해소의 약이나 결혼시 함에 오곡을 보내는데 목화를 보내기도 하여 아직도 전국에서 목화를 가장 많이 재배하는 곳이 의성이며(참고자료 e방앗간 참고).음력 8월에 공을 기리는 제를 지금까지 모시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의복사의  일대 혁신을 일으켰던 면(綿) 생산은 목화 씨앗부터 직조법의 발명과 보급에 이르기까지까지 오로지  문익점 일가의 공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겨레21 1998년 10월 22일 제229호)

참고글 : 목면유전 기념비(의성) 면작 기념비(의성)

 

래(萊)公  (익점공 손자, 이곡파 파조)

문래 선조님은 목화솜을 회전시키는 기구를 만들어 서 실을 뽑는 기구를 만드셨는데 문래가 만들었다 하여 문래라고 부르다가 물래(자음동화)로 불리기 까지 하였다.
그러나 문익점의 장인인 진양정씨 측에서는 목화의 공로를 가로채기 위하여 이름이 외자인 것을 기화로 족보까지 변조하여 정문래라고 하고 이런 자료를 배포하고 홍보하여 검증없이 실은 일부 사전과 전북매일신문에서도 정천익은 공민왕 때 문과에 장원하여 판부사(判府事), 전객령(典客令)을 역임했다. 그의 아들 정문래(鄭文來)는 물레와 취자차(取子車)를 통한 제사법(製絲法)을 고안했다는 기록도 보입니다만 아무런 의의 제기 없이 팔리고 있으니 잘못에 대한 사과와 시정을 요구하여 관철되지 않으면 판매가처분 등의 소송도 불사해야 하건만 일회성 분노로 끝을 맺고 보고만 있으니 통탄할 일입니다만 손 바닥으로 가린 하늘이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지만 .장인과 사위이요 우리들의 외할아버지의 가문인데 함께 목화를 보급하였다고 할 일임에도 이런 식으로 공을 다투어야 하는지 답답한 심정입니다.

  

영(英)公  (익점공 손자)

문영 선조님은 베를짜는 기구를 만들어 짠 베를 문명베라고 하다가 무명베로 이름이 변하였는데 추위에 떨던 국민들을 따뜻하고 위생적인 삶을 유지하게 하셨고 목화재배로 농가수입증대와 농한기인 겨울에 베를 짜게 되니 새로운 농가수입원이 되었고 무명베의 대일수출로 외화획득에 큰 몫을 하게 만드신 분입니다.
한겨울에도 작물을 자라게 하는 현재의 비닐을 생각하면  옛날의 목화의 쓰임을 이해 하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겨레를 백의민족이라고 하는 말도 무명베로 흰옷을 지어입기 시작한 후의 일이기도 하니 영 선조님의 발명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만  하나 일부 사전에서는 정천익의 아들 정문영이라고 적혀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