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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하면 문익점 선생을 생각하게 되고 남평문씨하면 목화를 생각하게 됩니다. 목화는 우리 국민들께 많은 유익함을 주었으며 입고 계신 내의는 거의가 면(cotton)입니다 세계화로 우리보다 자연조건이 좋은 곳들과 경쟁이 되지 않아 작물로는 재배를 하지 않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도 목화의 재배가 늘고 있습니다. 원예작물로 재배되기 때문입니다. * 수록 내역 및 순서는 아래와 같으며 제목을 클릭하면 바로 연결됩니다 - 목화씨앗 분양 - 목화 품종과 분류 - 목화 형태와 용도 - 각국의 목화재배 역사 - 목화 화분 재배 - 문씨와 목화 1) 충선공과 산청시배지 2) 동정의 역사 3) 승로(承魯)公(익점公 장손) 4) 래(萊)公(익점공 손자, 이곡파 파조) 5) 영(英)公(익점공 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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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에 떨던 백성들을 따뜻하게 하였던 목화는 현재는 거의 수입하고 있어 구경조차 어려운 식물입니다.
꽃이 좋고 다래가 맺히며 목화는 겨울을 견디니 관상용으로 좋으며 토질을 가리지 않고 잘 자라기에 화분에서 기르면서
자연을 사랑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도록 합시다. |
구분 |
설 명 |
산청목화시배지 |
경남 산청군 단성면 배양리 106번지 |
목화마을 |
원주시 문막읍 건등3리 목화체험장, 목화제품 판매등 |
e방앗간 |
경북 의성군 의성읍 도동리 967-2 목화씨앗 가공판매 ☎054-843-3917 |
권외진 여사 |
경남 산청군 단성면 성내리 187-5 목화연구원장 |
칠성면업사 |
경남 함양군 함양읍 용평리 607-23 임채장 ☎055-963-2328 |
학 명 |
Gossypium herbaceum Linn |
원산지 |
동아시아 |
꽃 말 |
어머니의 사랑 |
염색체수 |
2n=26 |
개화기 |
8-9월 |
분 류 |
아욱과 목화속 1년초 |
품 종 |
① 해도면(G. barbadense):열대 남아메리카 원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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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
충선공(忠宣公) 문익점공이 아시아면의 목화씨를 들여오시고 |
시배지 명예관리인 정정대씨(58)는 "목화는 꽃과 목화송이가 함께 아름다워 꽃이 두번 핀다고 말하고 목화 송이는 3~5개의 뭉치가 한 올로 이어져 있는데 길이는 1KM를 넘으며 옛날에 삼베, 갈포등 갈색이나 황색 옷을 입던 우리민족이 흰 목화로 만든 옷을 입으면서 백의민족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일보 1997/12/12 19면 최학림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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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
목화의 자람에 고온이 필요해 연평균 15℃ 이상인 열대에서 온대의 남부에 걸쳐 재배된다. 재배의 북방한계(限界)는 북위 37°였으나 품종이 개량되어 현재는 몽골에서도 재배된다.햇볕을(日照) 좋아하여 자라는 동안 날씨가 40%이상이 맑아야 하고, 특히 결실기에는 맑은 날이 계속되어야 열매 맺음이 좋아 미국 남부의 목화지대가 적지로 목화의 대부분을 생산하고 있다. |
토양 |
이어짓기(연작)로 인하여 생기는 장애가 적으며 토양에 대한 적응성이 크다. 산성에는 약하나 염분에는 강하므로 염분이 많은 알칼리성 토양에서 재배되는 것이 보통이다 |
형태 |
꽃모양은 무궁화나 접시꽃과 비슷하다.꽃 밑에 모서리가 둥근 삼각형 모양의 3개의 포엽(包葉)이 꽃잎을 갈고리처럼 움켜쥐고 있는데 안쪽에 꽃받침이 있고 꽃받침 속에서 꽃봉오리가 생겨나 길게 자라나는 모습도 아름답다. |
실뽑기 |
섬유는 긴 것이 해도면이 5㎝, 육지면은 3㎝, 아시아면은 2㎝ 정도이다. |
용도 |
○솜 : 고급품은 면사·면직물 등을 만들고, 품질이 나쁜것은 이불솜, 탈지면 등에 이용된다. 솜화약(火藥)이나 각종 충전재(充塡材)로 사용된다. ○목화씨 : 기관지의 천식과 디스토마의 구충제로 사용되었고 ○면실유 : 압착 또는 용매추출(溶媒抽出)로 짠 기름으로 품질이 좋고 값이 싸 튀김기름 등에 사용. 냉각법으로 고형분을 제거한 것은 샐러드유·마요네즈유에 적합하고 마가린 원료가 되며 동물성지방과 섞어 라드(lard)를 만들며 비누 원료에도 쓰인다 |
인도 |
아세아 목화로 기원전 수세기부터 목화공업으로 유럽에 알려졌으며 모헨조다로유적(현재 파키스탄領)에서 기원전 2000년 경의 지층에서 면사가 발굴되었다 |
페루 |
아세아면이 BC1500년경부터 이용되었고 인도와 별도로 직물을 만들었음이 밝혀졌으며 그 후 동남아시아·아라비아·아프리카 및 남부유럽으로 목화재배가 퍼졌다 |
중국 |
아시아면이 11세기경부터 화중(華中)·화남(華南)에서 중요한 작물로 재배되었다 |
이집트 |
서양인들이 해도면이 서아프리카나 수단에 전해져 카리브제도 면이 탄생되었다. |
이집트 |
고대부터 섬유작물로 아마(亞麻)가 생산되었지만 기원전부터 목화가 이용되었다. |
중남미 |
콜럼버스가 오기 이전부터 중남미·서인도제도 일대에서 목화가 재배되고 있었다 |
영국 |
인도의 목화를 파나마에서 재배를 하고 미국에 전함 |
미국 |
1740년경 버지니아에서 재배되고 영국의 랭거셔에 대방적업이 일어나자 미국은 대규모 기업재배화 됨과 방적에 유리한 육지면은 세계 여러나라로 퍼져 생산되었다 |
한국 |
1363(공민왕 12)년 원(元)나라에 서장관으로 갔던 문익점(文益漸)이 목화씨를 숨겨와 경남 산청에서 장인 정천익(鄭天益)과 함께 재배하여 전국 각지에 보급되었다 1904년부터 목포(木浦) 면작 시험장(현 농촌진흥청 작물시험장 목포지장)에서 육지면 품종 육종시험을 실시하고 있는데 목화 품종으로는 목포 6호·목포 7호·수원 1호 등이 있다 문익점선생이 가져오신 목화는 일제때 육지면의 재배 권장에 밀려 자취를 감추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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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자라는 꽃봉우리와 희게 피었다가 붉게 지는 꽃은 물론이요 목화가 피기전의 열매인 다래도 구경거리이며 하얀 목화솜은 더욱 좋습니다.
옛부터 목화는 꽃과 솜꽃으로 두번 꽃이 핀다고 하여 화도화라고 했습니다. 화분에서 길러도 햇볕과 양분만 좋으면 생명력이 강해 잘 자랍니다. |
과정 |
작업 설명 |
씨앗준비 |
전년도에 수확한 솜에서 목화씨앗을 가려냅니다. |
씨뿌림 |
아파트인 경우 남부지방에서는 4월 하순 중부지방은 5월 상순이 좋습니다 |
씨앗뿌림 |
많은 씨앗은 포토를 이용하여 씨앗을 뿌리고 소형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보온합니다 |
관리 |
2~3일에 1회 정도 물을 주어 흙이 마르지 않게 합니다. 물기가 많으면 좋지 않습니다. |
쏙아내기 |
파종 20여일 후(키 10cm정도) 약한 싹들은 뽑아내고 종이컵에 한 개의 싹만 남깁니다 |
옮겨심기 |
쏙아낸 10여일쯤 후 목화의 키가 15cm 정도 자라면 밭에 옮겨 심거나 |
자람관찰 |
7월 초순경 꽃 봉오리가 맺기 시작하고 각 마디에 잎이 달리고 가지가 무성해 집니다. |
순자르기 |
꽃 봉우리의 자람을 돕기 위해 봉우리 없는 줄기의 끝을 때때로 잘라 줍니다 |
꽃 |
꽃 봉오리가 맺히고 흰꽃봉우리가 보이면 다음날 오전 7시~10시 사이에 꽃이 핍니다 |
다래 |
꽃이 지고나면 3~4㎝ 정도의 원형의 봉우리가 생기고 20일 가량 계속해 자랍니다(다래) |
북돋우기 |
왕성하게 자라면 퇴비를 추가로 넣어주고 주변이 흙을 모아 줄기쪽에 쌓아 높여줍니다 |
솜꽃 |
다래가 익어서(재래종 30일 육지면 43일) 갈색으로 변하고 서서히 벌어지면서 목화 솜이 보입니다. 관상용으로 두면 겨울에도 솜을 볼수 있습니다 |
거두기 |
먼저 익은 것 부터 순차적으로 따서 햇볕에 3일 정도 말려서 실을 뽑거나 솜으로 사용함. |
병충해 방제 |
진딧물 : 울숙주에서 알로 월동한 것이 4월 중~하순에 부화하여 5월하순~6월상순에 유시충이 나타나 점차 여름숙주로 옮겨진다 |
잎말이벌레 : 애벌레는 목화잎을 먹고자라서 생장을 방해하고 자라서는 목화 잎을 말아 집을 짓고 알을 낳으니 말린잎은 따서 버린다.씨앗을 황산으로 훈증한 경우 발생이 줄어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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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선공과 산청시배지 |
문익점선조님은 고려때 원나라 사신의 서장관으로 가시니 고려왕을 폐하고 덕흥군을 왕으로 옹립하라는 원나라 황제의 명을 거역하여 월남으로 귀양가고, 3년뒤 북경으로 오면서 목화를 보고는 국민에게 이롭다는 판단을 하시고는 국외에 반출을 금하는 품목이라 신변의 위험을 각오하고 숨겨오셔서 고향인 산청에서 기적적으로 재배에 성공하셨다.
우리의 세거지인 산청을 지키지 못한 사유는 왕권을 강화하던 태종때에 문익점공의 조카인 가학선조의 난으로 후손들은 뿔뿔이 숨어야 했기에 선영조차 돌보지 못하였고 누대의 세거지였던 산청(구지명 강성)세거지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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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은 한복의 목이 닿는 부분에 덧 붙이는 좁은 백색천의 테두리를 말합니다. 동정을 달 게 된 유래는 .세종원년 기해년 강성군 문익점 할아버지의 목면으로 인하여 이룩된 산업의 혁명과, 외화획득의 공로, 의류혁명의 위대한 공덕을 이 세상에 영원히 기념하는 뜻으로 세종임금이 특별히 만조백관을 모아 조야에서 명하기를 "이나라 백성이면 남자든 여자든 옷을 입는 것은 문익점 선생의 공덕인고로 동정을 달아 기리도록 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색깔있는 동정을 달지 못하게 하고 흰 동정만 달 게 한 것은 문익점 선생의 사후였기 때문에 영원히 상복을 입는다는 뜻입니다. |
승로(承魯)公 (익점公 장손) |
의성현감으로 계시면서 목화 재배의 적합여부를 시험하신후에 적합함을 아시고는 의성이 목화의 주산지가 되게 하셨는데 현재의 경북 의성군의 공룡발자국이 있는 곳으로 가는 고갯길옆에 위치한 목화 시배지는 승로 선조님이 목화의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하여 시험재배 하던 곳이며 목화 시배지가 있어 목화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목화재배로 고을을 부강하게 하신 공을 공적을 기리는 비석이 있지만 지금은 목화를 전량을 수입하고 있지만 해소의 약이나 결혼시 함에 오곡을 보내는데 목화를 보내기도 하여 아직도 전국에서 목화를 가장 많이 재배하는 곳이 의성이며(참고자료 e방앗간 참고).음력 8월에 공을 기리는 제를 지금까지 모시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의복사의 일대 혁신을 일으켰던 면(綿) 생산은 목화 씨앗부터 직조법의 발명과 보급에 이르기까지까지 오로지 문익점 일가의 공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겨레21 1998년 10월 22일 제229호) 참고글 : 목면유전 기념비(의성) 면작 기념비(의성) |
래(萊)公 (익점공 손자, 이곡파 파조) |
문래 선조님은 목화솜을 회전시키는 기구를 만들어 서 실을 뽑는 기구를 만드셨는데 문래가 만들었다 하여 문래라고 부르다가 물래(자음동화)로 불리기 까지 하였다. |
영(英)公 (익점공 손자) |
문영 선조님은 베를짜는 기구를 만들어 짠 베를 문명베라고 하다가 무명베로 이름이 변하였는데 추위에 떨던 국민들을 따뜻하고 위생적인 삶을 유지하게 하셨고 목화재배로 농가수입증대와 농한기인 겨울에 베를 짜게 되니 새로운 농가수입원이 되었고 무명베의 대일수출로 외화획득에 큰 몫을 하게 만드신 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