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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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지란 일족이 모여사는 마을로 옛날에는 세거지가 양반의
중요한 조건중의 하나였습니다. |
연결표(세거지명 클릭하면 이동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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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산청군 신안면 | |||||||||||||||||||||||||
| 대구시 달서구 인흥마을 | |||||||||||||||||||||||||
| 전남 영암군 장암리 | |||||||||||||||||||||||||
| 부산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 |||||||||||||||||||||||||
| 서울 송파구 문정동 | |||||||||||||||||||||||||
|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 |||||||||||||||||||||||||
| 전국 각지 |
남평문씨는 크게 충숙공 휘 극겸(3世)의 두 아들, 휘 후식 후손과 휘 유필 후손으로 나누어 집니다. |
인흥 세거지와 인수문고 |
구분 |
시도민속자료 3호로 대구시에서 관리 |
소재지 |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 401-2 |
설명 |
열차로 동대구역에서 내려서 628번 시내버스 이용 |
고려 때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적었던 인흥사의 터에
99칸 이하로 제한하던 건축법이 없어진뒤에 井자 모양으로 길을 내고
우수한 자재와 기량으로 11개 건물 3,500여평을 건축하여 우리나라 건축의 전통과 안목을 높였다. 또한 수봉 문영박(1880~1930)의 사망 후인
1931년 비단천에 대한국춘추주옹(大韓國春秋主翁)이라는 제목의 추조문과 특발문을
수봉의 자제들에게 비밀리에 보냈는데 이는 독립자금을
지원한 데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며 가로 15cm, 세로22cm의 분홍색 비단천에
활자판으로 인쇄한 임시정부 조문을 보관하고 있다. |
중요건물 소개 |
* 수봉정사(壽峯精舍)- 천수봉에서 이름해 손님접대및 일족의 모임장소 |
2만권 고서 소장한 한국 최고의 민간 아카데미 |
- 조용현님의 명문가 이야기(푸른역사 출판)에서 발췌 - |
전통적인 도서관은 왕립도서관(규장각 등) 학교도서관(성균관, 향교,
서원등) 개인도서관과 유교적인 토양에서만 가능한 문중문고(문중 자녀들 교육용) 로 나눌 수 있다. |
인흥 방문기 (2002년 6월 문병달 ) |
08:45 柄俊충선공파 부회장, 차범부산종친회 총무, 丙準님과 함께 목화 이식을 위해 구마고속도로의 화원 나들목으로 나와 5번국도를 이용
대구쪽으로 가던중 본리동과 남평문씨 세거지의 안내판에 따라고 다리를 건너 하천의 옆길을 가니 왼편에는 인흥서원(추적 선생 배향)이 있고 오른편이 문씨
세거지로 참깨밭 사이의 진입로를 따라 인수문고앞 주차장에 도착하니 연락을 받으신 정기님(종손)과 태갑님(전 서울신문사장)께서 마중해 주셨다
대청에서 보이는 마당은 온통 꽃밭인데 종부님이 꽃을 좋아해서 3년전 산청에서 목화꽃을 본
후 씨앗을 구하여 목화도 3년째 기르며, 야생화도 손수 심어 가꾼다고 하신다 |
인흥세거지 사진 |
구마고속 화원나들목에서 5번 국도 이용 대구쪽 1.4km에서 다리를 건너서 우회전하여 하천 따라 2.5km 지점 |
소재지 |
전남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 |
설명 |
순평군파 문맹화 후손 가계로 최초의 복식부기를 사용 |
1454년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는 세조의 패륜에 분개한
문맹화(순평군 후손)祖 께서 벼슬을 떨치고 경기도 파주에서
이거 하신 곳으로 전체 3백50여 가구중 3백여가구가 남평문씨요, 시인묵객들에 의해 ‘용강에 붉게 타는 노을’ ‘월출산의
자욱한 안개’ ‘토끼동산 허리의 보름달’로 표현하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역사스페셜<다큐·KBS1 밤8·00> |
장암에 대한 게시판의 글들의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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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규연 |
2003년 4월 12일 KBS에서 방영한 전남 영암군 남평문씨 장암대동계를 보고 우리 선조들의 단결과 평등정신을 알게
되었습니다. 300년전 조선시대에 정확하고 투명한 회계로 신용사회를 이루었다는 것은 우리나라 상업회계상 자랑스런 지혜의
기록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방송에서는 남평문씨가 고려시대 상업을 주로 한 귀족이었다고 하더군요. 상업은 평민들이 하는 걸로 아는데... |
문병달 |
저도 방송을 잠시 보다 자리를 떠나야
했기에 내용은 모릅니다만 전남 영암군
남평문씨 장암마을은 순평군 달한선조의 후손들의 세거지로 알고 있습니다 사농공상이란 서열은 조선시대의 산물이고 고려시대는 군벌(지방토호)들이 양반이었다고 봅니다. 고려태조 왕건도 무역선단을 운영하던 상인의 집안이었고 제2부인인 나주오씨는 염전을 운영하던 집안이었습니다. 고려의 양반은 문반과 무반으로 벼슬을 한 사람을 일컬으며 조선의 양반은 우선 집성촌이 있어야 하고 선비의 삶을 실천하고 삼대 이내에 벼슬을 하는 집안이 명문으로 대접받았고, 반상의 구분이 뚜렸하여 신분상승을 제한하고 직업 또한 귀천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하여 세조에게 염증을 느끼고 상업에 치중하였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
문태훈 |
장암이라면 순평군파 일가분들이 살고 계시며 우리의 전통을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오고 있는 마을로만 알았는데 이번 역사스페셜을 보고 새로운 것을 알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를 할려면 정치자금이 필요한 것인데 고려시대 우리의 선조님은 최고로 위세를 떨쳤던 시기가 아닙니까? 그래서 자금도 많이 필요했을 것이나 장사는 양반이 하는것이 아니라 중인이나 평민이 하되 총괄하는 것은 권력이있는 양반일것이구요. 고려시대 개성에는 시전이 크게 있었다는데 시전은 권력있는 양반이 운영하는 그런 상가아닙니까? 심지어 왕까지도 비단을 팔아서 자금을 조달했다는 말도 있으니 송상하면 국제적으로 유명한 상인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우리의 코리아라는 명칭도 고려의 송상들이 세계각국으로 장사를해 고려를 알려 지어진 이름으로 알고 있습니다.아무튼 우리의 선조님들이 그렇게 TV이에 나오니 가슴이 뿌듯합니다. 그리고 승권씨 순평군파 24대손이라는데 어느 선조님을 기준으로 하시는지요 그것이 궁금합니다. 순평군 달한선조님을 기준으로 하시는지요 아니면 유필선조님을 기준으로 하시는지요 저는 광주에 거주힙니다. 장암하고는 가까운 거리지요 예전부터 마음은 있었는데 실천을 못했지만 직접 장암을 체험하려합니다. |
문승권 |
저는 순평군파 24대손인 문승권이라 하며, 바로 '장암(일명
'마당바우)이 고향입니다. 저는 아침에 www.kbs.co.kr/history를 통해 회원가입 후 인터넷으로 보았는데 대부분 아는 분들이 나오시더군요.. 경영학 중 회계학을 전공했던터라 유심히 눈여겨 보았는데 몰랐던 부분도 발견되었습니다. 1. 1668년부터 창립되어 유지되어 온 '장암대동계'와 '남평문씨 문계'가 있는데 투명하게 공개하고 감시하는 기능이 있었고, 현재도 거의 중장년층에도 상부상조정신에 따라 동년배들끼리 또다른 '계'가 조직되어 있으며, 2. 남평문씨가의 대동계는 그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을 하는 장부인 용하기(用下記)로 쓰임새를 아래로 기록한다는 의미로, 조선사회의 공동재산 관리에 대한 것을 담고 있었습니다. 3. 내(內)를 중심으로, 경주최씨의 경우는 이(以)를 중심으로 예를 들면, '1781년 봄 벼장부'라는 보조부로서, 왼쪽에 차변(항목과 두, 승, 홉), 오른쪽에 대변( 항목과 두, 승, 홉)을 대차평균의 원리에 의해 기록, 집계했다는 사실입니다. 4. 장부기록 용어를 보면, 질(秩, 차례질)이라는 계정(account), 과목, 항목과 유사한 의미로서 순서대로 정리, 기록한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그래서 봉차질(수입), 급(給)차질(지출)로 현재의 손익계산서의 비용과 수익으로 대응하여 분리, 회계처리함과 같으며 또한 이익질(秩), 소비(秩)로 구분도 했으며, 단위는 계량형에 의한 척도로서 두, 승, 홉, 작까지 명확하게 기록했다. 4. 부기(簿記)에 대한 세계최초는 이탈리아의 베니스상인들로부터 출발했다는 설도 있고, 고려시대 때 개성상인들이 작성한 '四介松都治簿法' 이 복식부기의 시초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5. 대동계의 시초는 역사책에도 나옵니다만 영암 월출산 바로 아랫마을인 '구림'이며, '장암'은 장암대동계를 운영하면서 기록면에서 충실했고,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전계원들 앞에 공개하고 잘못된 오류 즉 '오록'은 수정했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결산보고나 주주총회에서 보고한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6. 장암의 동네는 경기도 파주 봉일천 지역에서 조선시대 초기에 낙남(落南)하여, 나주목사로부터 장암으로 터를 받아 정착하여 3개파(영보, 서계, 율산)로 3형제가 터를 이루고, 4km 떨어져 월출산이 정면으로 보이는 전형적 농촌지역 입니다. 7. 지역적으로는 상업지역은 아니라고 보며, 장보고를 연상할 수 있는 바닷가인 목포와는 20km 이상 떨어져 있어 당시에는 교통수단이 불편해서, 사농공상으로 분류함은 착오가 아닌가 합니다. 고려시대 때 선조들께서 영의정 등이 특히, 많이 배출되어 고려시대를 피크로 보며, 조선시대에는 영호남 지역으로 흩어져 특별히 상업에만 의존한다고 봄은 무리라고 봅니다. 장암의 동네는 집성촌으로 사와 농의 중간정도로, 수년전에는 '효의 마을'로 군내에서 지정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8. 향리에 이렇게 오래 된 장부기록을 보존 해 옴은 처음 알았으며, 어느 정도 종가집에서 족보정도만 보관되었을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원리에 따라 상부상조하며, 전계원 참여하에 300여년동안 빠짐없이 기록, 보고함이 의의가 큰 것 같고, 중년계층에서 이어 받을 세대가 없어서 단절이 될까 우려도 됩니다. 이농현상이 심한데다 회계기록이 요즘은 PC프로그램에 의해 기록, 정리되고 한문에 의한 붓글씨 기록을 부담스러워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9. 최근 회계부정으로 미국의 엔론(에너지회사)사태, SK 분식회계처리와 같은 경우가 많음은 회사를 곱게 포장(자산이나 이익이 많게)해서 대출이나, 투자자들에게 좋게 보이고자 하지 않습니까? 하나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역사, 효, 투명성(유리알), 계, 장부기록, 상부상조, 예절, 조상숭배 등이 느껴지는 뜻깊은 날이었습니다. "한국계의 장부기록에 관한 연구"를 논제로 하고픈 맘도 있습니다. 남의 것, 큰 나라것만 좋다고 무조건 찾고, 보고, 관심가지는 것보다 우리 것에 대해 되돌아 보는 지혜도 가져여 한다는 사실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10. 자료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전성호 박사 (물가사)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명희 박사 (향토윤리) - 국립문화재연구소 |
장암마을 사진첩 |
장암마을 회관과 공동주차장 |
장암정 안내판 |
장암정 |
장암에서본 월출산과 억세 |
장암마을의 문창집님 가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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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인 애송정의 주련과 현판 |
애송정현판과 벽화와 부착물 |
소재지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
설명 |
남평문씨 동래파종중의 북면파 후손들 집성촌 |
웅천리는 행정구역으로 중리 미동 석길의 자연부락 3곳을 합한 법정동 이름입니다.
1955년 경에는 200여 가구 중 80% 이상이 남평문씨 의안공파 동래파종중의 북면파 후손들이 모여 살았으나
현재는 50% 정도의 비율인데 주로 부산으로 많은 이주를 하였습니다. 문연정(文淵亭)은 21세 여욱(汝郁- 동래종중 북면파)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1632년에 건립한 정자인데, 1927년 후손인 문용호를 비롯하여 지역유림이 처음 수계 한 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근래에는 기장군 한시 연구회에서 해마다 시화를 개최 하고 있다. 문연정 인근의 철마 제1경으로 불리는 홍류동 계곡의 홍류 폭포는 상단 5m 중단 20m이며 아래는 100m 정도의 와폭인데 햇살이 비치면 무지개가 보이는 곳입니다. 종가인 문용호 고택은 2007년도 발행한 철마면지에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미동 부락에는 1988년 내무부, kbs, 서울신문 북면파의사 공동주관으로 아름다운 가정 개인대상에 문동길님이 선정되었으며 해마다 식목일이면 나무를 잘 가꾸는 조림가의 집안으로 문백섭님이 소개되곤 합니다. 2001년 아름다운 정원으로 방송에 소개되기도 한 집도 있는 마을이며 마을의 경로당에는 어르신들의 웃음소리가 드높은데 마을의 길흉사나 객지에서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하면 꼭 들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경로당 옆에 있는 당산입구에는 1974년 산수회에서 건립한 수리정이란 비석과 문성운, 문덕수가 건립한 정헌대부 동지중추부사 문공 휘 세명 집승유허비가 있다. 수리정(愁離亭)은 숙종때 이조참판을 지났던 이선(李選) 장희빈의 아들을 세자로 책봉함을 반대하다가 유배되었는데 21세 상익(증 통정대부, 공조참의)공의 집에 기거하면서 집승정과 유란헌에서 소일하면서 송강 정철의 일부문집을 재정리하고 별세했는데 집승정은 수리정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
문정동(文井洞)- 서울 송파구 문정동 |
병자호란 때 인조(仁祖)가 남한산성으로 피난 가다가 이곳에서 쉬면서 물을 마셨는데,
그 물맛이 매우 좋아 이 마을에 사는 문씨 성을 따서 문정(文井)이라고 하였다. |
문래동(文來洞)과 문래공원-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
서울 영당포구 문래동(文來洞) 은 목화 및 섬유산업과 깊은 관계가 있는 지역으로, 1930년대 이곳에 방적공장이
생기면서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하였고 유실동(실이 있는 동네), 사옥정(絲屋町-실을 뽑는 마을)으로 불리다가
1952년 동명을 바꿀 때 文益漸의 목화 전래와 "물레"라는 방적기계의 이름을 살려 문래동으로 바뀌었다. 문래동명 유래 문래역사 내에 설치된 물레 문래역사 내에 설치된 물레 문래공원 위치안내 지도 문래공원내 목화묘목 분양 행사 현수막 분양중인 목화묘목 목화로 만든 화분 전시 |
미정리 세거지 |
충남 |
태안군 남면 몽산리는 성숙공의 후손들의 집성촌이며 |
전북 |
김제군 공덕면은 순평군파의 집성촌이며 |
전남 |
화순군, 보성군은 순질공의 후손 |
경북 |
경북 성주군 벽진면 매수리 |
경남 |
경남 합천군은 판서공파후손 |
제주 |
북제주군은 남제공의 후손의 집성촌들이며 |
북한 |
함남 함흥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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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열각 |
삼척김씨 |
강원도 동해 (문제홍의 처) |
효열각 |
제주고씨 |
전북 옥구군 옥산면 남내리 (문한규의 처) |
표열각 |
수원백씨 |
경남 합천군 본량면 항곡리 (문택수의 처) |
효자각 |
문찬석 |
전남 보성군 율어면 율어리 |
표열각 |
파주염씨 |
충남 서산군 남면 몽산리 (문정호의 처) |
효자각 |
문흥주 |
전북 옥구군 옥산면 |
경암별묘 |
문동도 |
경남 합천군 용주면 |
숭의전 |
문익 |
경기도 연천 |
숭의전 |
문극겸 |
경기도 연천 |
고간원 |
문극겸 |
충남 공주군 유구면 추계리 |
경현사 |
문익점 |
전남 장성군 |
구암사 |
문익주 |
전남 영암군 영암면 장암리 |
삼현사 |
문자수 |
전남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 |
표충사 |
문홍현 |
전남 화순군 이양면 오유리 |
충렬사 |
문기방 |
전북 남원 |
구암사 |
문상례 |
평북 의주 |
학봉사 |
문응규 문기호 |
평북 의주 |
광동영당 |
문익점 문래 문영 |
광주직할시 서석동 |
쌍효문 |
진주강씨 |
전북 옥구군 옥산면 남내리 (문정학의 처) |
쌍효문 |
문장갑 문장박 |
광주직할시 서석동 |
효열문 |
장흥오씨 |
전남 장흥 (문흥로의 처) |
정려문 |
문덕중 |
전북 옥구군 회현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