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표(아래 항목 클릭하면 이동합니다) |
||||||||
|
|
주소 |
경북 군위군 우보면 달산리 고산동 산725번지 |
배향선조 |
◎10세 충선공 문익점(文益漸) - 충선공파 파조 |
향사일 |
음력 3월 중정(中丁) |
창건연도 |
1609년(광해군1) |
봉강서원 전경 봉강서원 강당 경현사 - 신실
❏ 연 혁 |
봉강서원 건립 유래 |
충선공 익점 선조님의 큰 아들 중용(中庸)公의 장남 諱승노(承魯)께서 의성 현감을 하실때
선조의 제사를 모시기 위하여 멀리 산청까지 갈 수가 없었기에 선조의 사묘(祠廟)를
만천동(경북 의성군 금성면 제오리 공룡발자국 유적지 안쪽의 마을 뒷산)에 세웠다.
사림들이 봉강서원(鳳岡書院)이라하여 제례를 모셨으나 세월이 흘러 서원은 없어졌다. 승노(承魯)공께서 의성 현감으로 계실 때 금성면 제오동에서 목화를 시험재배하여 토질이 적합함을 아시고 목화재배를 권장하여 의성군이 목화의 주산지가 되고 농가소득이 높아진 사실을 기념하기 위하여 군의군 우보면 달산동 선대 일가들이 의성군 금성면 재오동에 충선공 선조 목면유전포비를 건립하여 선조를 추모하였으며 - 1936년 경상북도에서는 금성면 탑리에 충선공 선조 사적비를 세우고 대구 일가들이 이곳 금성초등학교에 밭 800여 평을 매입하여 매년 목화를 재배토록 하여 매년 면화 풍작제를 관민들이 모셨다. - 1945년 독립 후에는 사림(士林)들이 매년 향례를 모시고 대구종친회 대표들이 참석하여 재수비를 부담하여 왔는데 1949년 농지개혁때 대구의 덕환(悳煥)씨가 아들 명의로 소유권을 변경하였다. - 1962년 포항의 영식(榮植)씨와 명득(明得)씨가 자비로 단장을 쌓고 수호 관리케 하였다. 현재는 군에서 비석 주변의 300평에 목화를 심고 사적비를 관리하고 있으며 - 1960년 이곡(14세 래)파 후손들의 집성촌인 경북 군위군 우보면 달산리의 현 봉강서원 터에 일가들의 성금과 박재(博在), 홍재(洪在), 병우(炳祐), 성재(性在)씨 등이 신실인 경현사와 삼문 과 강당 외삼문 등을 중수하였으며 이곳의 선대 일가들은 의성 재오동에 선조 목화 전포비도 세웠고 문중의 운영에 병원(炳元)씨와 경재(慶在)씨가 이어 받아 많은 노력을 하셨다. |
사진보기 연결표(아래 항목 클릭하면 이동합니다) |
||||||||
봉강서원 영상 |
서원입구 |
상의문(외삼문) |
정문 (상의문)현판 |
마을 안내석 |
강당 |
서원전경 |
신실인 경현사 외삼문 |
유허비각 |
충선공 유허비 |
충선공 영정 |
이곡공(래) 영정 |
해은공(영)영정 |
강당인 봉강서원 편액 |
신실인 경현사 편액 |
비문보완 |
덕문재 건립성금 |
현판과 주련사진 |
중건기 |
봉강서원 복설운(1) |
봉강서원 복설운(2) |
2010년 향사 사진제공: 대구종친회 영록님 |
2009년 향사 사진제공: 대구종친회 영록님 |
충선공 진설 |
정해공 진설 |
양민공 진설 |
충선공 삼우당(익점)축문 |
정해공 이곡공(래) 축문 |
양민공 해은공(영) 축문 |
분정기 |
행사 준비 |
향사후 일가님들과 환담 |
작별인사 |
기념촬영 |
부산의 일가님들 |
봉강서원 2008년 향사참례기(문병달) |
만덕 동회앞에 종친회승합차가 도착하고 삼계문중회장님 용만님이 도착하시고 두표님과 부산종친회장님도 오셔서 약속시간인 07:30 출발했다. 청도휴게소에서 식사하실분이 없어 커피한잔을 들었다.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군위 나들목을 나와 봉강서원앞에 도착했다. 정말 대단한 기술이다. 10:30 서원에는 종구님과 일가님 몇분이 행사 준비를 하시다가 인사를 나누었다. 봉강서원에는 3년간 개근하여 참석하는데 작년에는 행사후에 해은공 묘소에도 다녀왔으며 1년만에 대하는 분들이지만 모두가 반갑게 대한다. 아직 대구와 청도 청송에서 오신다고 하신 일가님들이 도착하지 않아 기다리는 동안 마을을 돌아보았는데 탁주한병 사먹을 곳도 없는 곳이었다. 제사전에 소주와 돈육으로 입가심을 하고 있는 동안에 일가들이 도착하고 분정을 하였는데 대구 남정회장이 초헌, 삼계문중 도식회장이 아헌 부산종친회장이 종헌이고 대구의 한기님이 축을 하였으며 집례는 청도 석범회장이었고 알자는 종구씨였다. 예년보다 많이 늦어 12:35에 도열하였는데 10여명은 서원 마루에서고 헌관과 집사들과 참제자 20여명은 신실앞에 섰다 헌관집사의 행동과 홀기가 맞지 않아 혼란이 있는데 진행을 살피지 않고 홀기를 읽고 있으며 알자인 종구씨만 바쁘기는 하지만 어긋나기 일수이다. 13:07 예필을 하고 마루에서 식사를 하는데 일가들이 준비한 정성이 깃든 식사와 매년 준비하는 동동주를 들었고 일가들과 담소를 나누는데 문이재님은 공군의 대선배여서 더욱 반가웠다. 14:20 일가들과 인사를 나누고서원을 나와 제오리의 공룡발자국유적옆의 목면유전전포를 가기위하여 제오리를 찾고 번지는 몰라 아무렇게나 입력했더니 다른 마을로 가 버려 길을 물어서 찾았고 |
봉강서원 2006년 향사참례기(문병달 ) |
07:40 온천장 역에서 병준님과 청계부회장 병준상임부회장
창근님 경문님 차갑님으로 7명이 남양산을 거쳐 08:00 55번고속도로에 진입하고 08:40
동래구를 거쳐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09:00 동명휴게소에서 25분을 쉬었다 09:50 고속도로에서 나와 919번 도로에 진입하였는데 달산마을로 진입하는 길을 지나쳤기에 길가는 분께 물었더니 도로 내려가서 나호1교도 들어가라고 한다. 나호1교를 찾고 신흥사의 안내판을 따라 들어가서 10:10 봉강서원의 뒷편의 길을 따라 주차장인 마당앞에 주차를 하였다. 전번에 왔을 때에는 주차장도 없었는데 기와도 덮고 마당에는 쇄석도 깔았다. 영훈 회장님은 먼저와 계셨고 대구의 한기님과 청도회장님과 경제님과 일가님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방안에서는 분정을 하고 분정기와 시도기를 작성하였고 나는 서원을 돌면서 전번에 찍지 못하였던 주련과 시를 적어 붙인 목판들도 찍었다 신실에 들어가서 충선공과 정혜공 해은공의 영정을 차례로 찍어서 나왔다. 11:25분 청도회장님의 집례와 신만부회장의 초헌으로 제사가 시작되었는데 창근님이
축을 읽었으며 참석자는 30여명이었고 지역일가들의 힘으로는 목조건물을 유지하기에
역부족이어서 신실의 입구문은 꺽쇠를 곳곳에 박아도 기우러져 있었고 신실과 비각도
허물어져 가고 있으니 충선공파 종회에서 여력이 있다면 가장 먼저 지원이 되어야
할 곳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