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108호에 관련된 문화재청 자료

1997년

97년문씨의의

1998년

1999년

1999년문씨이의

2004년

이우성답변

토지소유자

문화재청의 사적 108호에 관한 기록을 복사한 내용입니다

1997년도

 일  자

                   내    용     요    약

97. 7.3

경상남도지사로부터 명칭변경 진정서 이첩
내용(요약)

명칭변경신청 : 文益漸 棉花始培地 → 木棉史蹟址(*정재철 : 木棉始培地)

신청사유 :
  ①고려사, 조선태조실록에 “목면종자를 가져온 분은 문익점선생이고, 그 종자를 처음 심어
      재배(시배)한 분은 그의 장인 정천익이라고 기록되어있음.
  ②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배양동은 또한 처음으로 씨아와 물레를 창제하여
     제작법과 사용법을 전국에 보급한 곳임.

  ③정척인 선생인 집안의 하인과 여자 종으로 하여금 처음으로 개량베틀을 만들어
     목면베를 짜내게 한 다음 전국에 보급시켰음.

97.8.13

정재철이 직접 우리국에 명칭변경 및 경내 사적비의 경외 철거 요청
   청원인 : 진주성내(청계서원) 진주(진양)정씨 대종회장 정호준

* 같은 내용의 청원을 장관, 감사원장에게 제출, 우리국에 이첨

 97. 8. 20

1차 중간회신 : ‘ 기념 86741-1408 공문(전문가 검토로 처리지연)

'97. 8.27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에게 검토의뢰('97. 9.11 의견접수)
검토의견 : 문헌상 기록(고려사, 태조실록, 삼우당선생일기 가전본기)에 의하면
  ①문익점 선생이 원나라에서 가져온 목화씨를 그의 장인 정천익과 함께 재배에

         노력한 결과,  정천익이 심은 씨앗 가운데 하나가 싹이 터서 이를 3년 동안 배양,
         씨앗을 수확하여 이웃에 보급하였고,
  ②정천익이 외국의 승려로부터 씨아 제작기술을 배웠음.

  ③물레의 제작과 직조기술에 관한 부분의 기록에서는 차이가 있음

2차 중간회신 : ‘ 기념 86741-1485 공문(전문가 검토의회중임)

'97. 9.25

문화재 위원회 제3분과 제 9차 심의 회의(보류)

'97.10.31

문화재위원회 제3분과 제 10차 심의 회의(변경키로 의결)

제안사항 :  경남 산청군 소재 사적 제 108호 문익점 면화 시배지에 대한 지정명칭 변경

                   사항을 부의하오니 심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안사유 : 본 위원회 제8차(’99.10.15)회의 검토결과에 따라 예고('99.10.26 부터 30일

   이상)한 사적 제 108호 문익점면화시배지의 지정명칭변경 여부를 심의하고자 하는 것임.
지정 예고 결과 : 남평문씨충선공파종친회장으로부터 이의 제기

주요골자

   대상문화재 : 사적 제 108호 문익점면화시배지(文益漸 棉花始培地)

  소재지 :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106-1

  변경명칭 : 사적 제 108호 목면시배유지(木棉始培遺址)

  변경사유 : 문헌상 기록(고려사, 태조실록 등)에 의하면, 처음 목면종자를 가져온 분은 문익점 선생이고,
  그 종자를 심어 재배에 성공한 분은 그의 장인인 정천익선생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 사실(史實)에 맞게 명칭을 변경코자하는 것임

남평문씨 주장

현재 사적으로 지정·고시되어 있는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106-1번지 일대는 비록 재배에는 실패했다하나 문익점선생이 목화씨를 가져와 그의 장인인 정천익선생과 서로 나누어 처음 심었던 자리로 현 지정명칭이 틀린 것이 아님.

진주정씨 주장

ⓛ남평문씨측에서 주장하는 사월리 106-1 일대에서 문익점 선생이 면화를 시배하였다는 고증은 없음.

②문익점과 정천익이 한 마을에 살았는지, 이웃마을에 살았는지는 불분명하나  동향인이란 것은 명백함    (태조실록, 문익점 卒記)

③성공한 사적을 제쳐두고 실패한 사적을 문화재로 지정하여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은 없을 것임.    따라서, 현 지정명칭을 “목면시배유지”로 지정하여 객관석을 유지토록 하는 것이 타당할 것임.    * 관련자료 : 별지

'97.11.10

“목면시배유지”로 명칭변경 예고

 97. 11. 6

3차회신 : 기념 86741-1876 공문(목면시배유지로 명칭변경예고통보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됨

  이 중 97. 11. 6 및 98. 1. 16자로 회신한 공문 2건이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된 바 있으나, 동 명칭변경 신청서류가 정씨문중회장명의로도 접수되어 회신하였던 바, 반송된 적이 없어 같은 문중의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는 생각과 또한 앞서 보낸 2차례의 공문이 반송되지 않은 점 등으로 미루어 주소변경이 된 것이라는 판단으로 보관하고 있던 중 ‘98. 3. 20 감사원 감사관으로부터 귀하의 민원에 대하여 회신이 한번도 없다는 이유로 동 민원을 제출하였다는 전화통보를 받고, 같은 날 우편물 수취가 가능한 주소를 귀하에게 전화로 확인 회신한 바 있음을 참고하시기 바라며, 또한 귀하께서 ’98. 1. 15자로 제출하였다는 회보요청내용의 서류는 우리국에 접수된 바 없음을 알려드림

  아울러, 동 명칭변경 예고와 관련하여 남평문씨 종친회에서 전화(‘98. 12.22),
방문(’98. 1. 20) 및 문서(‘98. 2. 23)로 새로운 사실(현재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것은 비록 재배에 실패하였지만, 문익점 선생이 직접 재배한 곳이 틀림없으므로 문익점면화시배지가 틀림없음. 그리고 정천익선생이 재배한 곳은 다른 곳이므로 별도 사적지정을 검토해야 할 것임)을 주장하면서 이의를 제기함에 따라 이에 대해 관계전문가의 검토중에 있어 다소 지연되고 있음을 알려드리니 이점 양해햐여 주시기 바람.

'97.12. 3

남평문씨충선공파종친회 회장 문영갑에게 중간회신
관계전문가의 검토등을 거쳐 처리해야 되는 관계로 상당시일 소요되겠음

97.12. 6

이의제기 민원에 대하여 문화재위원 최영희등 9명에게 검토의뢰

97.12.13

정동오 위원 검토의견 접수

민원을 검토한 결과 문익점 면화시배지의 지정명칭을 “목면시배유지”로 변경 예고한 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지정을 보류하는 것이 좋겠음.

동 문화재의 소재지인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016-1은 문익점이 거주했던 유지이지만 정천익은 거주했던 사실이 없다고 한 민원인의 주장에 대한 사실여부 확인

정천익의 당시 거주지와 문익점으로부터 목면씨를 받아 번식 재배했다는 토지의 고증

97. 12. 15

김일진위원 검토의견 접수
남평문씨 충선공파종친회에서 동 명칭 변경예고 사항에 대하여 이의제기한 민원을 검토한 결과, <명칭변경이 부당한 사유> 5개항목중, 1,2,3,5항은 검토대상이 아닌 것으로 보임

4항에서 [사적 제 108호의 소재지인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106-1은 ...... 문익점 선생이 거주했던 강성현 배양리의 현지명이고, ...... 정천익은 단성면 사월리에 거주한 적이 없고, ...... 단성면 광정리에 거주했다......]는 내용은 정천익이 사월리 소재의 사적 제 108호 사적지와는 관계가 없다는 주장이 은연중에 내포된 것으로 보이는데,

정천익이 씨앗에 싹을 틔우고 3년동안 배양하여 많은 씨앗을 수확하여 보급한 밭이 그가 살았다는 관정리 또는 현 사적지가 아닌 딴 곳이라는 말인가? 만약, 이러한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현재 지정된 사적지 자체의 지정문제가 재검토대상이 되어야 할 것임.

그러나, 위의 사실에 대한 자료 제출이나 조사, 확인이 있기 전에는 당위원회의 지정명칭에 하자가 없는 것으로 사료됨.

'97.12.19

문화재위원회 심의

심의결과 : 문화재위원회에서 신중히 심의한 결과, 당초와 같이 “목면시배유지”로 변경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심의, 의결함.

97.12.22

문씨종친회장 문영갑 전화문의
지난번 “문익점 면화 시배지”를 “목면시배유지”로 문화재지정명칭을 변경하기로 한 예고사항에 대하여 이의제기한 바 있으며, 12월 19일 문화재위원회에서 심의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바, 그 결과를 알고 싶음.

한글창제는 학자들이 하였지만, 세종대왕이 한 것처럼 얘기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익점 면화 시배지”란 명칭도 같은 이치임. 현재 사적으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것은 비록 재배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각종문헌기록으로 볼 때 시배지에는 틀림없음. 따라서 지정명칭은 변경되어서는 안됨.

또한, 목면시배유지로 명칭을 변경할 경우에는 소송제기도 고려하고 있음

문화재청 답변 이의제기건에 대하여는 문화재위원회에서 심의하였으나, 문씨문중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음. 결과는 곧 문서로 회신하겠음.

정씨문중과 잘 협의하여 양문중이 조금씩 양보, 합의된 문서를 제출하여 주기를 간곡히 요망함.

97.12.23

정씨대종회 정채호 전화문의
지난번 명칭 변경하기로 지정예고된 사항에 대하여 최종 문화재위원회(97.12.19)에서 심의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결과와 심의 내용에 대하여 문씨 종친회에서 이의를 제기한 적이 있는지 알고 싶음


문화재청 답변
문씨종친회에서 이의를 제기한 적이 있고, 문화재 위원회에서 심의한 적이 있으나 양문중간에 첨예한 의견대립으로 자칫 물의가 일어날 소지가 있어 신중한 처리가 요구됨. 양문중간의 합의도출이 가장 바람직하므로 합의 노력을 요망함

97.12.29

한영우위원 의견서(*해외 출장으로 늦게 의견 제출)
     , '98.2.11자 검토의뢰 공문에 대한 의견으로 같음

1. 목면전래와 재배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가장 자세하게 소개한 자료는 <고려사>와, <태조실록>이며, 이 두 자료는 관찬자료인 까닭에 신빙성이 높다. 또한 이 자료는 누구를 특별히 포상할 목적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고, 문익점의 일생을 객관적으로 서술한 것이 특징임. 위 두자료는 공통적으로 목면씨를 가져온 것은 문익점이고, 그 씨를 싹틔워 국내에 보급한 것은 정천익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또 이 두자료는 취자거와 소사거를 명명한 것도 정천익이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정천익이 목면재배와 보급의 공로자이며 씨아와 물레의 발명자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나... 그러나, 씨가 없으면 재배가 불가능하므로, 씨를 가져온 문익점의 공로는 정천익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

2. 태종이후로 조정에서는 문익점의 공로를 기리기 위하여 강성군에 추종하고, 세종때에는 영의정 및 부민후로 추증하였으며, 고향인 단성의 도천서원과 장흥의 월천사우에 문익점 사당이 세워지기도 하였다. 정조때에는 문익점 서원이 사액되고 국자의 제사를 받기도 하였다. 또 장흔군 유치면에 문익점비가 세워지기도 하였다.

따라서, 조선왕조는 정천익보다 문익점의 공로를 더 높이 평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목화를 재배한 정천익의 공로를 부인한 것은 아니다.

3. 현재 사적 제108호로 지정된 곳은 문익점의 부탁으로 정천익이 목면씨를 재배한 곳이다. 그러므로 이 곳의 명칭을 “문익점 면화 시배지”로 호칭하는 것은 “문익점이 목면을 처음으로 재배한 곳”이라는 뜻이 되므로 오해의 여지가 있다. 따라서 “문익점면화시배지”를 “목면시배유지”로 바꾸는 것이 그러한 오해를 풀 수 있는 방법이 된다.

4. 사적 제108호의 명칭을 바꾼다 해서 문익점의 공로가 평가절하되는 것은 아니다. 정천익보다 문익점의 공로가 더 큰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무익점의 공로를 기리는 방법은 조선왕조에서 한 그대로를 따르는 것이 좋다. 다시 말해 조선왕조가 문익점을 얼마나 기렸는가를 “목면시배유지”에 사실대로 기록하고, 나아가 문익점의 사당을 세운 단성의 도천 서원과 장흥의 월천사우를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이곳이 지금 어떠한 상태로 있는지를 조사하여 적절한 조치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 문익점 관련 유적현황(유적총람)

1) 문익점 면화 시배지(사적 제 108호) :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106-1

2) 문익점신도비 : 산청군 신안면 신안리 75-1

3) 문익점묘 : 산청군 신안면 신안리 75-1

4) 강성서원 : 장흥군 유치면 늑용리 665

5) 강성서원 신실 : 장흥군 유치면 늑용리 665

6) 문익점 비 :        "         "

7) 백동사 : 장흥군 장평면 임리 46(남평문씨중에 뛰어난 선조봉안 및 제사)

5. 민원의 내용 중 한글창제의 세종과 거북선 제작을 이순신을 들어 사적지명칭의 원상회복을 요구한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한글과 거북선은 각각 한가지 사건이지만, 목면의 전래와 목면의 재배는 서로 인과관계에 있다 하더라도 행위가 다른 두 개의 사건이다. 그러므로 정천익이 목면을 재배한 그 땅(땅의 소유주가 누구이든 간에) 위의 “문익점이 목면을 처음으로 재배한 땅”이라고 명칭을 붙이는 것은 엄연히 사실에 어긋날 뿐 아니라, 두 개의 사건을 혼란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6. 끝으로 600년전의 문익점과 정천익이 사위와 장인으로 서로 협력하여 이룩한 위대한 업적을 후손들이 욕되게 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를 두 문중에 간곡하게 당부하고자 한다.

 

1997년 문씨측 이의제기

예고기간중("97. 12. 1) 예고 내용에 대한 이의

1. 고려사나 태조실록 등에 문익점이 목면의 씨를 원나라에서 가져와  그의 장인  정천익에게 재배를 위촉하였다고
    되어 있으나, 태종실록, 세종실록, 세조실록, 종종(정조)실록, 조신의 수간쇄록 등 정사에서 문익점이 재배에서
    부터 직포에 이르기까지 모두 전래하여 왔다고 기록되어 있고,
    조정에서는 이 공로를 문익점에게 봉작, 봉후, 포상하였을 뿐, 정천익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음.

    이는 한글(훈민정음) 창제에 집현전의 여러 학자가 협조하였으되, 그 업적은 오로지 세종대왕 한분의 업적이요,
    거북선의 제작에 이순신 장군 휘하의 여러 대목들이 수고하였으되 그 공로는 이순신 장군 한분에게만 역사적인
    평가가 되어 있음.


2. 이조 500년 동안 사림 명현 대선생인 이황, 이이, 송시열, 조식, 김굉필, 정여창, 김시습, 김종직 등
    선현의 글에도 목면전래와 재배에 대한 공로는 오로지 문익점 선생 한분의 업적으로 되어 있음.


3. 우리나라 역사에 목면에 관한 공로자는 문익점으로 확정된 정설을 이제와서 왜곡할 이유가
    없을 것이며, 국어사전에도 [목면공]은 문익점을 가리킴으로 나와 있음.

 

4. 사적 제 108호의 소재지인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106-1은 남평문씨 충선공파종친회 소유의 토지이며,
    문익점선생이 처음으로 면화를 재배한 곳이며, 단성면 사월리는 문익점선생이 거주했던 강성현 배양리의
    현 지명임. 산청군 단성면의 구 지명은 강성, 단계 등이었음.
    정천익은 단성면 사월리에 거주한 적이 없고 구 지명 진주 소남 관정(현 단성면 관정리)에 거주했음.
    기념관 건립대지도 남평문씨 충선공파 종친회 소유의 토지임.

5. 사적 제108호의 명칭은 1963년도 지정 당시 문화재위원들의 면밀한 검토와 결의 끝에 지정된 명칭임.

 

1998년 문화재청 기록

  일 자

                   내    용     요    약

98. 1. 6

정씨 대종회측에서 독촉 문의 전화
동 건 문익점 면화 시배지의 명칭을 “목면시배유지”로 변경키로 문화재위원회에서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빨리 조치를 하지 않는지 궁금해서 전화했음

남평 문씨측에서 명칭변경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므로 기존대로 유지하지 않을 경우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문씨측의 강력한 주장(전화통화)이 있어

문화재청 답변 신중한 검토 후 회신코자 하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기 바람

 98. 1. 7

양문중에 전화 통화결과를 토대로 검토보고서 작성

 98. 1.16

양 문중에 의견 회신함
남평문씨측 97. 11. 10자로 사적 제 108호 문익점 면화 시배지의 지정명칭을 “목면시배유지”로 변경하고자 지정예고한 사항에 대하여 지정당시의 명칭대로 유지하여줄 것을 요청한 민원서류를 검토한 바, 동 사항에 대해서는 정씨문중과의 의견대립이 있어 계속 연구, 검토가 필요함을 알려드립니다.
진주정씨
측 경남 산청군 소재 사적제 108호의 명칭을 맞게 변경하여 달라는 민원에 대하여 남평문씨 문종과의 의견 대림이 있어 연구검토가 필요한 사항임을 알려 드립니다

98. 1. 20

남평문씨 종친회장 문영갑 방문 이의제기

문회장현재 건립완료되어 있는 유물전시관 건물 내의 안내판에는 문익점선생이 정천익 선생과 같이 면화를 재배하여 왔으나 재배에 성공한 것은 정천익 선생이라고 기록되어 있음 따라서 명칭변경 없이도 얼마든지 정천익 선생을 부각시킬수 있음

답변그래도 정씨 문중에서 계속 명칭변경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객관성있게 “목면시배유지로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함

문회장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나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제작 등에서 미루어 볼 때 당연히 문익점 면화 시배지로 하는 것이 합당함. 또한 현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은 비록 재배에 실패했지만 문익점 선생이 직접 재배한 곳이 틀립없으므로 , 문익점목화 시배지라고 하여야함, 그리고 정천익 선생이 재배에 성공한 곳은 다른 곳이므로 정씨 문중에서 주장하는 곳은 정천익면화시배지 등으로 별도 지정 검토해야 할 것임. 결론적으로는 명칭은 현행대로 유지하되 문안내용을 변경하여 안내판을 새로 세우는 것이 타당함. 태종때 간행된 고려사에 의하면 문익점선생을 역적으로 기록해 놓은 것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고 이조 말엽에 김창강, 김태경에 의해 간행된 신고려사에 의해 겨우 바로 기록되었음. 97.12월 초 국장님을 만나 뵌적이 있는데 30억 여원을 투입, 10년동안에 걸쳐 전시관 건립공사를 완료하고 개관을 앞두고 있으나 정씨문중의 방해로 지금까지 개관을 못하고 있는바, 이것은 예산낭비임. 정씨문중은 4만오천명이나 문씨문중은 50만명이나 되므로 정씨 측에서 실력행사로 전시관 개관행사를 막는다면 우리도 실력행사를 할 수 있음

전시관 주변에 담장이 필요함, 사월리에 거주하고 있는 합천이씨 측에서 전시관과 광장 사이에 나있는 군도로 때문에 담장을 설치할 수 없어 개관이 점점 늦어지고 있는데 이것을 해결하는 것도 큰 문제임

답변동 명칭건에 대해서 현행대로 유지하던지 명칭을 변경하던지 간에 양문중에서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아량을 보여 문제해결이 조속히 이루어지도록 처신하여 주시기 바람. 가장 바람직한 것은 양문중회장이 공동명의로 합의문서를 제출해 주는 것임(예를 들자면 명칭은 그대로 두되 문안내용만 수정하고 사적비도 철가하는 문제를 공동명의의 문서로 제출하는 방안 등)

문회장양문중간의 합의문서 작성에 대하여 노력을 해 보겠지만 거의 불가능 할 것으로 예측됨

98. 2. 10

진주정씨 대종회 정종택이사 방문

정씨측본건 명칭문제 관계로 지난 2얼 4일에서 7일까지 마라톤 문중회의를 했으며, 당연히 명칭은 변경되어야 함. 모든 역사문헌기록을 보더라도 정천익 선생이 배양에 성공하여 전국에 보급시킨 것은 사실이므로 “목면시배유지”로 바꾸는 것은 당연한 이치임. 지난번 ‘98. 1. 16. 회신내용은 본인이 알기로 문씨문중의 로비 때문이 아닌가 함

답변근거없는 말씀은 삼가주시기 바람. 문씨 문중 측의 이외내용을 살펴보면, 현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 비록 재배에 실패하였지만 문익점 선생의 시배지가 틀림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정천익 선생이 재배에 성공한 곳은 현 사월리가 아니라고 문씨측에서 주장하고 있음

정씨측그것은 어불성설임. 사월리가 시배지라는 객관적인 입증자료가 어디 있으며, 남사, 관정, 사월의 당시 지명은 관정리임

답변정선생님의 논리는 정천익 선생이 재배에 성공한 지역도 마찬가지 논리라고 판단됨. 그리고 개관행사를 방해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들리는데 이러한 행동은 문중의 품위를 해치는 행위라 생각되므로 앞으로는 자제해 주었으면 좋겠음

정씨측문화재위원회에서 결정된 대로 명칭을 바꾸지 않을 경우, 실력행사를 할 수 있음. 장관을 방문할 계획이 있으며, 지난 2월 4일부터 7일까지의 종친회의에서 결정된 민원서류제출계획도 가지고 있음

  공을 논한다면 임란 때에도 의병활동에 참가한 것은 정씨 뿐임

답변 : 실력행사와 같은 물리적 방법으로는 이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으며, 민원서류 제출문제는 문중의 의사대로 하시기 바람. 문씨 종친회회장의 방문시에도 제의를 했지만 양문중간의 합의문서를 제출해 주면 좋겠음.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명칭문제, 안내문안문제, 사적비 철거문제 등에 대한 합의문서를 부탁드림

정씨측 : 합의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지금 종친회 분위기로 보아서는 살벌하므로 관계당국의 현명한 판단을 바람

답변결론적으로, 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양문중간의 합의가 절대 필요하다고 생각되니, 양문중에서 조금씩 양보해 주셨으면 좋겠음

 98. 2. 10

양문중에 방문결과를 토대로 검토보고서 작성

 98. 2. 11

양문중측의 짱을 토대로 문화재위원들에게 재검토 의뢰

 98. 2. 19

진주<청양>정씨 대종회 독촉민원 제출
관계전문가의 검토결과, “목면시배유지”로 명칭변경하기로 한 사항은 문헌고증에 의한 것이므로 조속히 변경조치 요망

 98. 2. 23

남평문씨충선공파종친회회장 이의제기 민원제출
현재 사적으로 지정고시되어 있는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106-1번지 일대는 비록 재배에 실패하였지만, 당시에 문익점선생이 목화씨를 가져와 그의 장인인 정천익선생과 서로 나누어 처음 심었던 터이므로 “문익점면화시배지”라는 명칭은 틀린 것이 아님. 따라서 최초 사적지정 당시(‘59. 1. 23 고적지정, ’63. 1. 21 사적 재지정)의 명칭대로 두는 것이 옳다고 봄

 98. 2. 24

문화재위원회 제 3분과 제 2차회의에서 재심의

심의결과 : 이의신청내용에 대하여는 차기위원회에서 재검토하기로 함

 98. 3. 27

문화재위언회 제 3분과 제 2차회의에서 재심의

심의결과 :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좀더 검토 후, 차기 위원회에서 재심의하기로 함

98. 4. 3

감사원 위탁민원 이첩에 대한 회신(정재철 등)

양문중 회장에게는 중간회신, 장관에게는 처리결과 보고

회신내용 : 동건 명칭변경 민원서류가 감사원에서 우리로 이송되었기 검토한 바, 동 건은 이미 귀하께서 ‘97. 8. 13자로 우리국으로 제출한 민원사항과 같은 내용으로서 관계전문가의 검토등을 거쳐 처리해야 되는 관계로 상당시일 소요되겠음을 아래와 같이 수차례 회신한 바 있음

 98. 4. 9

정재철 민원제출(목면사적관련 문씨이의에 대한 회신)

1. 단성면 사월리 106-1 토지는 남평문씨 충선공 종친회 소유로
    문익점 선생이 처음으로 면화를 재배한 곳이란 주장에 대하여

   가.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목면화기”중 충선공삼우당 문선생 목면 유전표에
        “밭 주인이 수없이 바뀌었다”는 구절이 있음. 따라서 목면시배지가 60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주인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

   나. 문익점선생은 정사인 고려사, 태조실록뿐아니라 사찬기록(신도비명, 묘갈명, 가전등)
         에도 진주 강성현인으로만 기록되어 있음.
        남평문씨 족보(구보, 신보 공히)에도 문익점 선생의 출생지 또는 거주지에 대한 기록은

        없음. 따라서, 사월리 106-1에서 문익점 선생이 면화를 시배하였다는 고증은 없음
        (참고 : 사적지에는 문씨종중땅(사월리 106-1)뿐 아니라 정씨 종중땅(사월리 96-1)도

          있었음  : 현재는 국유)

2. 정천익 선생은 단성면 사월리에 거주한 사실이 없고 단성면 관정리에 거주하였다는

    주장에 대하여

   가. 정천익 선생이 관정리에 거주하였다는 기록은 없음. 다만, 300여년전의
        선조(온열공)께서 거주하신 기록은 있음(참고 : 목면시배년도<1364년>,
        은열공<고려현종시 1009-1091, 병부상서)

   나. 태조실록 문익점 줄기에(문익점이) “목면씨를 향인 전객영 치사 정천익에게 주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문익점과 정천익이 동향인이란 것은 명백하나 한마을에 사셨는지
        이웃마을에 사셨는지는 분명하지 않음

3. 문익점 선생이 면화재배에는 실패하였지만 처음 심은 곳이니 사적명칭을
    “문익점 면화시배지”로 하여야 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성공한 사적을 제쳐두고
      실패한 사적을 문화재로 지정하여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할 사람은 없을 것으로 앎

4. 결론

목면시배지의 정확한 위치는 고증이 없으나 배양촌(사월리)은 예부터 목면을 재배한 곳이라는 구전이 있으므로, “목면시배유지”로 지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사료되며, 지금에 와서 다른 대안은 없는 것으로 생각함

 98. 4. 14

  민원(정재철)에 대한 회신 (향후 동 건 검토시 참고하겠음)

문화재위원 최영희 등 9명에게 동 민원서류 송부

 98. 4. 24

문화재위원회 심의 (제 3분과 제 4차 회의)

심의결과 : 본건에 대해서는 양문중의 선의적인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함

 98. 4. 28

민원회신(양 문중 및 정재철, 경남, 장관)

회신내용 : 경남 산청군 소재 사적 제 108호 문익점면화시배지의 지정 명칭변경과 관련한
민원사항에 대하여는 문화재위원회 제 3분과 회의에서 역사적 사실규명 이전에
“양문중의 선의적인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최종적으로 심의된 바,
이를 알려드리오니 널리 이해하여 주시기 바람. 아울러, 양문중으이 합의가 조속히 이루어져 귀중한 문화유산인 사적 제 108호 관리 보존에 차질이 없도록 협조하여 주시기 바람

 

1999년 문화재청 기록

 일  자

                   내    용     요    약

 99. 8. 31

민원서류 제출(정재철)

민원요지 : ‘97. 12. 19 문화재위원회심의결과대로 명칭변경하여 줄 것

본위원회 제4차(‘98. 4. 24)회의 심의결과에 따라, 사적 제 108호 “문익점 면화시배지의 명칭을 변경하는 문제는, ”우선 양 문중의 선의적인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양문중에 회신한 바 있으나, 1년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양문중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므로, 당초 ”목면시배유지“로 명칭변경하기로 심의, 의결(’97. 12. 17, 문화재위원회)된 바와 같이 조속히 변경하여 줄 것을 청원함

사적명칭을 바로잡는 일은 양문중의 합의사항이 아님

문제의 발단은 정천익 면화시배한 것을 문익점이 면화시배한 것으로 사적명칭을 정한데 있음. 이를 바로잡으려는 정씨문중과 드래로 유지하려는 문씨 문중은 30여년간 평행성만 달렸고, 아무런 합의점도 찾지 못했음. 이제와서 새삼스레 합의가 될 리가 없음. 결자해지 차원에서 문화재 당국이 잘못 정한 사적명칭을 문호재 당국 스스로가 바로 잡아야 할 것임

본말이 전도된 결정임

  사적명칭이 잘못되어 양 문중의 시비가 그치지 않으므로 사적명칭을 바로 잡는 것이 근본치유책인데 사적명칭은 그대로 두고 양문중이 합의하라는 것은 병원은 그대로 두고 병을 고치라는 것과 같음

허구의 사적을 알면서도 바로잡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음

  “문익점이 목면씨를 가져왔고 정천익이 이를 재배번식하였다”는 것은 학계에 정설이고, 문화재위원회에서도 이를 인정하고 1997. 12. 19 ‘목면시배유지’로 명칭변경을 결의하고도 이제와서 양문중의 합의라는 뜻을 이해할 수 없음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결론지은 문씨 이의신청을 다시 논의하게된 까닭이 미심쩍음

  문화재당국에서는 상술한 ㅂ와 같이 1997. 12. 19 문화재위원회에서 ‘문씨의 이의가 이유없다’고 결론짓고 사적명칭을 ‘목면시배유지’로 변경하기로 심의의결하였는데도 이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가 1998. 2. 23 다시 문씨의 이의신청을 받아 문화재위원회에 상정하여 1998. 4. 24 ‘양문중 합의’라는 모호한 결론을 얻게 된 까닭이 미심쩍음. 이에 앞서 문씨 이외에 대해서는 본 민원인이 1998. 4. 9자로 당국에 제출한 의견서에 그 부당성을 명백하게 지적한 바도 있었음

 99. 9. 17

문화재위원회 제 3분과 제 7차회의 검토

검토결과 : 추후 재검토키로 함

99.10. 15

문화재위원회 제 3분과 제 8차회의 검토

검토결과 : 사적명칭 변경을 예고함

변경명칭 : 목면시배유지

변경사유 : 문헌기록 (고려사, 태조실록 등)에 의하면 처음 목면종자를 가져온 분은 문익점 선생이고,
그 종자를 심어 재배에 성공한 분은 그의 장인인 정천익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 사실(史實)에 맞게 명칭을 변경코자 하는 것임

99.10. 26

명칭변경예고

99.11. 15

예고에 대한 이의제기(남평문씨충선공파종친회)

이의내용 : ‘98. 8. 24 공문으로 문화재관리국에서 “양문중의 선외적인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회신받은 이후로 진양정씨 문중과 일차의 협의도 이루어진 적이 없음을 이유로 명칭변경 수락할 수 없음을 통보함

99. 11.22

중간회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등을 거쳐 처리해야 되는 관계로 상당시일 소요되겠음)

99. 11.23

예고에 대한 이의제기(남평문씨대종회 회장 외 16,082명)

민원요지 : 진양정씨측의 진정요지가 고려사, 태조실록에 실려있는 재배성공을 정천익씨가 하였고, 문익점 선생은 고사하였다는 내용을 들어 문익점 면화시배지 명칭은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명칭변경 요청으로 예고가 된 것으로 사료됨.

문익점 선생께서 목면종자를 갖고 오셨다는 것은 초등학교 학생 이상이면 다 알것임. 이에는 진양정씨나 이를 심의하시는 문화재 위원님들로 이의가 없을 것임. 종자를 재배해서 문익점선생의 종자는 생육중에  고사하였고 정천익선생의 종자를 성공하였다고 한 것을 논의 하는 것 같음

-1963년도 사적 제 108호 명칭 지정은 당시 전문위원들이 면밀히 심의하고 학문적으로 적법하게 명칭이 지정된 것임.

-문익점선생께서 애국애족하는 마음으로 목면 종자를 갖고 돌아오셔서 생가의 밭에 직접 심으셨음은 잘 아는 사실임 직접 심으셨던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사적 제108호 문익점면화시배지로 지정 되었던 것임

-파종한 것이 고사하고 생육하고는 별개의 문제임

-문익점면화시배지 지정은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지정되었기 때문에 문익점 선생의 이름자를 꼭 표기하여야만 빛을 내드리게 됨

-정천익선생이 파종하여 성공한 것에 대하여는 그 나름대로 그 분이 실지 파종하였던 고향인 진주시 소남면 관정리에 기념했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함

-현재 산청군 단성면 사적 제108호 문익점면화시배지의 소유가 남평문씨로 되었음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람

 99.11.30

중간회신(상당시일 소요되겠음)

 

1999년 문씨측 이의제기

충선공파 종회 이의 제기서

'98. 8.24자 문화재관리국 공문(기념 86741-705)에 경남 산청군 소재 사적 제 108호 문익점면화시배지의 지정명칭 변경과 관련한 민원사항에 대하여는 문화재위원회 제3분과회의에서 역사적 사실규명 이전에 “양문중의 선의적인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최종적으로 심의된 바 있음을 우리 종회에서는 통보받았습니다.
그후 우리는 진양정씨 문중과 일차의 협의도 이루어진 바가 없습니다.

 

그러던 중 '99.10.21 귀청에서 사적 제 108호의 문화재명칭변경예고 내용사유를 재차 공고하여 산청군수를 통해 통보받은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본 종회에서는 사적 108호 문화재 명칭변경을 수락할 수 없음을 통보합니다.
 

진양정씨측의 진정요지가 고려사 태조실록에 실려있는 ‘재배성공을 정천익씨가 하였고,
문익점선생은 고사(말라죽음)하였다’는 내용을 들어 “문익점 면화시배지” 명칭을 잘못되었다는 이유의
명칭변경 요청으로 예고가 된 것으로 사료됨.

 

문익점 선생께서 목면종자를 갖고 오셨다는 것은 초등학교 학생 이상이면 다 알 것임.
이에는 진양 정씨나 이를 심의하시는 문화재 위원님들도 이의가 없을 것임.
종자를 재배해서 문익점선생의 종자는 생육중에 고사하였고,
정천익선생의 종자를 성공하였다고 한 것을 논의하는 것 같음.

 

1963년도 사적 제108호 명칭 지정은 당시 전문위원들이 면밀히 심의하고 학문적으로 적법하게
명칭이 지정된 것임.

 

문익점 선생께서 애국애족하는 마음으로 목면종자를 갖고 돌아오셔서 생가의 밭에 직접 심으셨음은
잘 아는 사실임. 직접 심으셨던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사적 제 108호 문익점 면화시배지로 지정되었던 것임. 파종한 것이 고사하고 생육하고는 전연 별개의 문제임.

 

문익점 면화시배지 지정은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지정되었기 때문에 문익점 선생의 이름자를 꼭 표기하여야만 빛을 내드리게 됨.
 

정천익선생이 파종하여 성공한 것에 대하여는 그 나름대로 그 분이 실지 파종하였던 고향인 진주시 소남면 관정리에 기념했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함.
 

현재 산청군 단성면 사적 제108호 문익점면화시배지의 소유가 남평문씨로 되었음을 참고하시기 바람.

참고사항
(문화재 지정현황)

소 재  지 :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106-1

문화재명 : 사적 제 108호 文益漸 棉花始培地

지정면적 : 1,131 m2

지정일자 : '63.1.21('59. 1. 23 고적 지정)

 

2004년

문화재청

수신자

남평문씨 충선공파 종회 귀하 (부산 금정구 부곡동 23-2 남평문씨회관 )

발신자 송민선(학예연구관)

제목

사적 제108호 목면시배유지 명칭관련 민원에 대한 회신

 

1. 귀 문중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2. 귀 문중에서 남문충 04-13호(2004. 9. 3)로 우리청에 제출하신 민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회신합니다.

가. 목면시배유지 명칭과 관련하여 제출하신 민원은 이미 우리청에서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문화재위원회에 수차례 부의하여 검토한 후 회신하여 드린 바 있습니다. 현재의 명칭인“목면시배유지”가“문익점 전래, 정천익 재배성공”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 한 현 명칭을 유지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나. 더불어 신도비 및 사적비 관련 내용은 이미 경상남도에서 검토하여 귀 문중에 회신하여 주도록 요청한 바 있습니다만, 붙임 공문 사본과 같이 재 조치토록 통보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붙임 공문 사본 1부(별첨). 끝.

 

대전 서구 둔산동 920 대전정부종합청사 문화재청 사적명승국 사적과(042-481-4847)

 

정씨의 질문에 대한 이우성의 답신

의뢰자

정재철

답신자

(재)민족문화추진회장 이우성 답신내용(97. 7. 28)

내용

목면사적에 관한 귀하의 “역사적사실청원”에 대하여 본 회에서는 우리나라 가장 기본적인 문헌이며 1차 사료인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을 상고하여 다음과 같이 해석함

① 목면을 처음 재배하고 번식시킨 사람

   고려사에는 문익점이 증국에서 가져온 종자를 그의 장인 정천익에게 주어서 심게했다고 되어있고 문익점 자신이 심었다는 기록은 없으며 태조실록에는 문익점이 그 종자를 장인 정천익과 반씩 나누어 심었는데 문익점의 것은 다 자라나지 못했고 정천익의 것이 겨우 한 개가 살아나서 그해 가을에 정천익이 백여개의 씨를 얻게되고 그 후 해마다 더 심어서 이웃마을과 공ㄹ 사삼들에게 나눠주어서 번식시켰다고 하였음 그러므로 목면 재배는 문익점과 정천익이 함께 시작했으며 그 성공자는 정천익 임

② 물레 씨아 베틀 등을 만들고 무명베를 처음 짜서 보급한 사람

    조선태조실록에 자세한 기록이 있는 바 그것에 의하면 정천익이 지나가는 호승(胡僧) 홍원을 불러들여 그에게서 베짜는 기술을 설명하고 또 그로 하여금 여러 기구를 만들게 하여 가비(家婢)에게 베 한필을 짜게 하였는데 이로부터 이웃사람이 배우고 고을 사람이 습득하여 10년이 안되어 온 나라에 보급 되었다고 하였음 그러므로 물레, 씨아, 베틀 등은 모두 정천익에게서 나온 것임. 고려사에도 물레 씨아가 모두 정천익이 창제한 것으로 분명히 기록해 놓았음

③사적명칭은 목화(木花) 목면(木棉) 중 어느 것이 타당한가 문제

  목화와 목면이 같은 것이지만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 모두 목면으로 되어 있으니 목면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함

 

사적 108호 내의 토지소유자 변동사항

지번

지목

면적(㎡)

소유자 및 소유권 변동내역

96-1

557

13.12.18 사정(이복주)         
81. 5.21 소유권보존(신안면 소이리 45 정홍기)

89.11. 2 소유권이전(산청군)

*65-5

구거

20중7(6평중2평)

이만성

98-1

"

975

65. 6.24 소유권이전(이덕열)   88. 9.14 남평문씨 충선공파 종친회

99-1

"

1,448

48.12.24 소유권이전(이병옥)  88. 9.15 남평문씨 충선공파 종친회

100-1

"

1,382

86. 4.16 소유권이전(황도복)   88. 9.15 남평문씨 충선공파 종친회

*105-1

잡종지

3,018중192

(913평중 192)

13.12.10 이봉계    
65. 1.19 소유권이전(삼우당문선생유적보호위원회)

81. 4.8 남평문씨 충선공파 종친회

*106-1

"

456(138평)

*분할됨430

13.11.25 사정(문택호:전남보성군미력면 도개리)

81. 4. 7 명의변경 남평문씨 충선공파 종친회

81. 4. 8 소유권보존 남평문씨 충선공파 종친회

107-1

1,300

74.12.31 소유권이전(이남규)  88. 9.14 남평문씨 충선공파 종친회

*107-3

도로

76중10(23평중3평)

조점백외 2인

*108-3

155중56(47평중17)

*분할됨142

28. 7.17 소유권이전(문한석)    81. 4. 8 남평문씨 충선공파 종친회

*114-2

268중43(81평중13)

*분할됨181

43.12. 4 竹山五柱    81. 8. 6 소유권이전(이만호)  
88.9.14 남평문씨 충선공파 종친회

115

1,504

65. 6.30 소유권이전(이종규)  88. 9.14 남평문씨 충선공파 종친회

**91-1

(490평)

13.11.28 사정(이병무)          74. 5. 1 소유권이전(이영규)

*1562

13,167중 367

(1,983중111평)국유

*계

7필

1,131(342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