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정씨측 답변

유림이나 문씨들의 통고문에 대한 답변없이
2000년 10월 26일경 정천익선생 사적보존회 명의로
   답변식 회신문을 소책자를 만들어 산청군의 주민들에게 우송하였는데
35년간 문씨문중과 정씨문중들간에 얽힌 사연과 단성향교를 반박한 내용이었습니다

 

진양정씨 측에서 발간한 소책자 내용의 요약

목면시배지건에 대하여는
목면은 문선생이 원나라에서 가져왔고 처음 심어서 재배한 분은 정천익 선생이였고 처음 심어 재배한곳과 3년동안 번식시켜 씨앗을 나누어 준 곳이 배양마을인데 정천익 선생이 배양마을에 살았다고 주장하면서 선인들이 남긴 여러 문헌에도 기록이 있고 예조에서 청계서원에 내린 관문에도 기록이 있다

②봉작시호는 1785년 을사년에 간행한 진양정씨들 구족보책에 진양군 문충공으로 기록되어 있고
조선시대 류치명 선생이 찬한 청계서원 기문에도 기록이 있으며 청계서원을 세울 당시에 여러 유림들이 각처에 있는 서원 및 향교 등에 보낸 통문에도 봉작 봉군 시호를 용어로 기록하였다

③목면을 처음 심어 성공시킨 사적이 뚜렷이 남아 있다는 부분은 배양동(培養洞)이란 글자 그대로 재배해서 길러낸 마을이다

④자기들 선조를 극구 찬양하고 문익점의 사적들은 모두 거짓이라 하였으며

⑤ 단성향교 전교님과 유도회 단성지부회장님에게 보낸 공문서에 참으로 한심한 이런 비도덕적 비윤리적
    언사를 삼가 주기 바란다

 

남평문씨 측의 생각

①배양마을은 문익점 선조의 시배지 입니다.
②조선조 임금이 내린 근거는 밝히지 못하였고 모두 자기 선조들이 만든 기록일 뿐입이다.
③사실무근입니다. 배양마을 유래는 이 고장에서 누대로 살아오신 산청문화원장이셨던
   이병능 향토 사학자님께서 잘 알고 계십니다.
④역사의 모든 기록을 무시한 말입니다
⑤무례하기 짝이 없는 말입니다.

 

청계지(淸溪誌)

진양정씨 은열공파 문중(청계서원)에서 70여년전에 역사문헌과 상관없이 임의로 만든 서원지 입니다.
1. 청계지에 자기내 조상인 정천익선생을 推尊하기 위하여 封侯 封爵 諡號의 사실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태종때 삼우당 문익점선생과 같이 晋陽君에 봉하고 文忠公의 諡號를 받은 것으로 기록하고
2. 정천익선생의 世居地는 단성면 관정리인데도 단성면 사월리 배양동이 자기내 世居地이고  
    목화시배지인양 해놓고
3. 삼우당 문익점선생의 근소한 年上인 後娶 丈人으로서 학력의 차가 컸을 터임에도 불구하고
    師弟之關係인양 해놓은 등 의식적인 여러 오기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