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헌 정천익 신도비 철거 요청

퇴헌 정천익公은 문익점선조님의 장인으로 진양정씨 입니다.
문익점선조께서 가져오신 목화씨앗을 나누어 심어 선조께서 심은 씨앗은 나지 않고
장인이 심은 것이 한 개가 자라서 우리나라에 목화를 보급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진양정씨의 진정으로 사적108호 문익점 목면 시배지가 목면시배유지로 변경된후
목화시배지 앞에 밭을 구입하고 2000년 3월 17일 밤중에 비석을 세웠습니다
비문의 내용이 역사 왜곡을 지나 황당하기까지 하여여 퇴헌선생을 욕되게 하고 있으며
문익점선조의 공적을 가로채는 내용이기에 신도비의 철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철거요청 사유

비문은 한문과 한글 번역문을 함께 기록하였는데
1. 문익점은 덕흥군에 붙었다고 적어 사실을 왜곡하여 충선공을 욕되게 하고
2. 
우리동방에 목면을 처음 심어 온 나라에 펴고 만백성에게 옷을 입힌 큰공을 세운분은
    고려 공민왕때  판부사를 지내시다 치사하신 진양군 문충공 퇴헌 정천익 선생이시다
3. 배양동에 받들어 세우기로 하였으니 그것은 일찍이 선생의 조부때부터 사시던 곳이고
   또한 선생께서 목면을 처음 심어 성공시킨 사적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는곳이기 때문이라  
4. 원나라 수도에서 목화씨를 가져왔고 마땅한 땅가려 처음으로 심었다네
5. 선생의 봉작과 시호는 조선태종조에서 추록했으니...라고
사실에 없는 내용들을 적었습니다.

문익점공의 공적을 정천익의 공으로 적었는데 살펴보면

     1. 문익점공이 덕흥군에 붙었다는 기록은 잘못이란 역사적인 해명이 있슴에도 왜곡하였고

     2. 문익점이 원에서 갖여온 목면씨를 얻어 단성면 소남리 관정마을에 처음 심어 온 나라에
     퍼지게하여 만백성에서 옷을 입힌 큰공을 세우는데 도운 분은 퇴헌 정천익 선생이었고

    3. 정천익선생이나 조부가 배양에 살았다는 기록이 단성향지등에 기록이 없는 이유인 즉
    진양정씨의 족보에도 소남이었는데 족보를 위조하여 죽은 사람을 배양으로 이주 시켰는데
    배양리는 문익점 선생의 선조때부터 살았고 생가앞에 손수 심은 은행나무는 경상남도
    보호수로  지정되어 현재도 생가앞에 무성하며
4.  원나라에 간 사실이 없슴에도 목화씨를 가져왔다고 하니 정천익공에 대한 욕입니다

    5.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시호를 받은 일은 없고 생원시에 합격하여 전객령을 했다고 합니다.
    문충공의 시호는 포은 정몽주 선생님의 시호입니다.

 문익점공의 계배부인은 정천익공의 따님이시니 장인이시고 아이들의 외가가 되는 집안입니다
사적 108호 문익점 면화시배지가 설립되면서 진양정씨 문중은 우리 문중에 대해 불만을 갖이고
수십년의 준비로 정호준이 문화재청에 있을 때 청원하여 문익점면화시배지가 목면시배유지로 졸속하게 변경되니이에 억지내용의 비석을 사적지 옆에 세웠습니다.
양 문중은 후손끼리의 화목하고 돈독하여야 할 것이며 외갓집안의 잘못을 짚어주는 것도
남평문씨 후손들의 할 일이라고  생각되어 양문중이  구설수에 오르지만  다투어야 하지만
모든 앙금을 털고 더욱 돈돈한 관계를 갖여야 할 것입니다